중국 御风少年张二狗님의 의천도룡기 2019 팬픽션입니다. 현대 배경 AU에 장무기x양소. 노년에 접어든 두 사람의 이야기이며 알츠하이머 소재가 나옵니다. 쓰신 분께 한국어 번역 게재를 허락받은 글로, 타처 전재는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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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 시간이 너무 일러서, 5월의 밤은 아직 추웠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모를 부연 것들을 걷어내지는 못했다. 온 세상이 칠흑 같은 혼돈 속이었다. 장무기는 양소의 안전띠를 매어 주고 안개등을 켠 뒤, 음침한 하늘 아래를 달려 경승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양소는 조수석에 기운 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온 몸에 내키지 않는 기색이 넘쳐흘렀다. 안전을 생각해서인지 장무기의 운전을 과격하게 방해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채 말없이 창 밖으로 흘러가는 어둠을 바라볼 뿐이었다.
장무기가 양소에게 할당할 수 있는 주의력은 정말 아주 약간이었다. 양소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곁눈질을 하니 하얗게 센 귀밑머리만 언뜻 보였다. 그의 양소는 이제 나이가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잠시 아득해졌다. 의기양양 패기만만하던 양소와 만난 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그의 곁에 앉은 양소는 이미 노인이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양소는 여전히 의기양양했고 여전히 양소였다. 그러나 아예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양소는 점점 기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되었다. 솔직하게 아무 거리낌 없이 희노애락을 표현했다. 장무기는 그것이 기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젊은 시절 양소는 온갖 종류의 비밀을 마음속에 꼭꼭 숨겨 두고 장무기 앞에서는 언제나 아무 일도 아닌 척 담담하고 여유 있게 굴었다. 그것들이 숨길 만한 일이 아닐 때조차 그랬다. 그러나 이제 장무기는 양소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트레이트마냥 온갖 추측을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 양소는 아주 직설적으로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싶다”, “훠궈 먹을래”, 혹은 “약 먹기 싫어” 같은 식으로.
장무기의 답은 언제나 “안 돼요”였다. 그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어쨌거나 양소는 기분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병이 난 후로, 양소는 기분이 나쁠 때면 말없이 다른 어딘가를 바라보며 절대 장무기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장무기―반쯤은 그의 감시자이기도 한―에게 소리 없이 저항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무기는 속으로 웃었다. 그는 차를 몰면서 한편으로 양소를 어떻게 달래면 좋을지 궁리했다. 그는 양소가 제멋대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양소를 달래는 것이 특별히 힘든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즐겁고 기뻐서, 피곤하기는커녕 조금은 달콤하기까지 했다.
노동절 휴가 아니랄까봐, 출발한 지 30분쯤 지나자 차가 지독하게 막혔다. 앞쪽에 휴게소의 네온사인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장무기는 차를 멈춰 세우고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화났어요?”
“그럴 리가. 신나도 모자랄 판에.” 양소는 즉각 대답했다. 마치 줄곧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경직된 웃음까지 지어내 보였다. “새벽 두 시에 북경 고속도로를 타 보기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다 네 덕분이지. 견문도 넓히고.”
“해돋이 보러 가는 거니까 그렇죠.” 장무기는 순진하게 말했다. “낮잠까지 자고 가면 해돋이가 아니라 해넘이를 봐야 되잖아요.”
“해돋이가 뭐가 좋아?” 양소는 찬동하지 않았다. “네가 안 보면 해가 안 떠?”
“거기다,” 양소는 투덜거렸다. “보고 싶으면 혼자 가서 보면 되잖아. 왜 나까지 끌고 와. 혼자 화장실도 못 가는 초등학생 여자애도 아니고.”
장무기에게는 억울한 일이었다. 원래 산에서 해돋이를 보고 싶다고 했던 건 양소였다. 예전에 몇 번쯤 애매하게 돌린 말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양소는 아직 병들기 전이었고, 그의 삶은 온갖 문서와 그래프와 표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버티다가 은퇴하고 여행 계획을 잡고 있을 무렵 그는 갑자기 병이 났다. 증상은 아주 끔찍했다. 아무 예고도 없이 피를 토하고 기절해서 욕실에 쓰러졌다. 의사인 장무기조차 욕실 바닥에 가득한 피를 보고 너무 놀라 혼이 다 달아나서, 긴급전화를 누르는 내내 떨리던 손이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진정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저 좀 심각한 위출혈이었다. 그간의 세월 동안 쌓인 고강도 노동의 피로, 폭음, 불량한 식습관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위를 복구하기 위해 양소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겨울이 올 때쯤 양소는 거의 회복되었다. 양소의 나이를 생각한 장무기는 병원의 온갖 과에 그를 억지로 끌고 다니며 건강검진을 받았다. 초음파, 암 검사, 심전도, 뇌파. 다른 항목은 모두 정상이었으나 뇌파 검사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이 나왔다. 장무기는 믿을 수 없어서, 혹은 받아들일 수 없어서, 다시 양소를 데리고 CT와 MRI를 찍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뇌파 검사를 뒷받침할 뿐이었다. 양소는 정말로 병에 걸렸다. 진단서와 차트에 의하면, 완전한 환자였다.
장무기는 양소와 말싸움을 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양소의 기억력이 쇠퇴했다는 문제 말고도, 그는 애초에 양소를 말로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시원하게 그의 빈정거림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컴컴한데 혼자 가면 무섭잖아요. 나랑 같이 가 주는 셈 치면 안 돼요?”
장장 25년에 달하는 동거 생활 끝에 장무기는 양소를 다루는 법을 거의 완전히 터득했다. 이제는 가히 달인의 경지에 올라 안 먹힐 때가 별로 없었다.
양소는 장무기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문득 깊은 한숨을 쉬었다. “장무기 너도 철 좀 들어야 하는데.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장무기의 얼굴이 굳었다. 목구멍에서 시고 쓴 울음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게요.” 아주 약간 목이 메었다. 그러나 오히려 웃고 싶었다. “나는 정말 당신이 없으면 못 살 거예요.”
다시 30분이 지났으나 그들은 2킬로미터 정도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기나긴 자동차의 행렬이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불빛들은 점차 꺼져갔고 도로 위는 죽은 듯이 적막했다. 경찰 검문소에서 미약한 형광등이 반짝거릴 뿐이었다. 장무기는 전화기 화면을 켜 보았다. 3시 20분. 그는 초조해졌다. 십중팔구 해돋이는 못 볼 것 같았다.
양소는 킨들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약간 노안이 와서 안경으로 시력을 교정해야 했다. 안경테를 몹시 까다롭게 고른 것만 빼고, 양소는 아주 담백하게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정상적인 노화 현상이고,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읽는 책은 철학서였다. 제목이 아주 길고 괴상했다. 『실존주의 카페 : 자유, 실존, 그리고 살구 칵테일』. 커다란 네 줄 제목에 담배와 술을 든 손이 그려져 있었다. 책을 대충 훑어 본 장무기는 양소가 정말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회의가 들었다. 양소는 철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었을뿐더러, 정신 상태도 결코 겉보기만큼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뭘 하려 했는지 가끔 잊어버렸고,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도 가끔 잊어버렸고, 딸이 이제 더 이상 아빠를 껴안고 울던 어린 아가씨가 아니라 대학에 다니는 자식을 둔 어머니라는 사실도 가끔 잊어버렸다.
하지만 양소는 책읽기를 좋아했고, 장무기도 막을 필요가 없었다. 독서와 사고 모두 뇌 기능의 퇴화를 완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의 양소는 장무기가 기억하는 양소와 더 가까웠다. 냉정하고, 예리하고,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날과 모서리가 미간에 서려, 언제까지나 어떤 사람에도 어떤 일에도 세상의 어떤 부조리 앞에서도 무뎌지지 않을 것 같았던.
4시에도 여전히 경승고속도로 위였다. 그들은 느릿하게 2킬로미터쯤을 이동했고 또다시 자동차의 행렬 속에 갇혔다. 휴게소 앞에 멈춰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 위안 아닌 위안에 장무기는 약간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는 양소에게 물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양소는 소리 없이 입술을 벌렸다 다시 닫았다. 그는 여전히 그 길고 괴상한 제목의 철학서를 읽고 있었다. 진도가 빠르지 않아 고작 이십여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었지만, 장무기를 기분 좋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정신과 동료가 말하길 알츠하이머 환자는 주의력이 약해진다고 했다. 양소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병증이 가볍다는 의미였고, 약물치료로 완치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지도 몰랐다.
“배는 안 고픈데, 뭘 좀 먹어야지.” 양소는 무미건조한 철학 개념들로부터 고개를 들었다. “약 먹어야 되잖아?”
장무기는 대답했다. “맞아요.”
양소는 안전띠를 풀었다. “그럼 마트 가서 좀 사온다.”
장무기는 황급히 그를 막았다. “안 가도 돼요. 차에 먹을 거 있어요.”
양소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그는 망연히 물었다. “우리 먹을 거 가져왔던가?”
당연히 가지고 왔다. 출발하기 전 양소와 장무기가 함께 시내 마트에 가서 샀고, 양소 자신이 고른 것들이었다. 그렇게 산 먹을거리 두 봉지가 지금도 차 뒷자리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양소의 멍해진 눈 앞에서 장무기는 도무지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음…… 아뇨. 깜박했어요.”
양소는 짐짓 질렸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거의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짧은 찰나, 눈동자에 또렷한 기운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너도 참.”
장무기는 일부러 말을 받아 얼굴에 창피한 기색을 가득 띄웠다. “나 혼자 왔으면 굶어 죽을 뻔했잖아요.”
양소는 지갑을 챙겨들고 차 문을 열며 기분 좋게 말했다. “먹을 거 사올 테니까 여기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장무기는 양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되풀이해 말했다. “얼른 갔다와야 돼요.” 그는 덧붙였다. “혼자 있으면 무서우니까.”
양소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부스러졌다. “알았어.”
장무기는 울룩불룩 빵빵한 봉투 두 개를 트렁크에 숨겼다. 자신이 양소를 좀 과보호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일단 양소가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동차 핸들을 두드리며 같이 다녀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양소와 함께 보내는 매 초가 귀중했다. 낭비하지 말아야 했다.
양소는 금세 돌아왔다. 장무기는 봉지를 받아들고 안전띠를 매어주고 차 문을 잠근 후에야 양소가 사온 물건들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봉지 안에는 빵과 우유, 달콤한 간식 몇 개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장무기는 봉지를 다시 양소에게 건네며 다소 엄격한 어조로 물었다. “다른 건?”
양소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슨 다른 거?”
장무기는 매정했다. “또 주머니에 숨겼죠. 담배.”
“아무 증거도 없이 사람을 그렇게 모……”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장무기는 그의 셔츠 주머니에서 남경 훤혁문 담배를 끄집어내 손에 쥐고 흔들어 보였다.
양소는 헛기침을 하면서도 꿋꿋하게 말을 끝냈다. “모함하다니.”
장무기는 냉정했다. “이건 압수.”
양소는 조금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는 좀 감정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막무가내가 된 것은 아니었다. 반 강제였다고는 해도 금연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담배를 사온 자신의 잘못이 맞았다. 그래서 그는 혼자 빵 봉지를 뜯고 고개를 돌려 휴게소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장무기는 또 웃음이 나왔다. 앞의 차들이 흔들흔들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장무기도 시동을 걸었고, 1킬로미터쯤 가다가, 또 고속도로 위에 멈춰섰다.
양소의 입가에 코코넛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 장무기는 굳이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글로브 박스에서 약을 꺼내고, 양소가 미간을 찌푸리기 전에 오이시 과일사탕을 그 위에 얹었다.
사탕 한 개로는 양소를 달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또 약이야.”
“약을 먹어야 얼른 낫죠.”
장무기는 약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양소는 약이 싫다고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어쨌거나 먹었다. 나이가 든 까닭에 그는 죽음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위출혈로 입원했을 때는 상태가 워낙 위험했기 때문에 뒷일을 부탁하는 유서를 쓰기도 했다. 그는 두 통을 써서 하나는 장무기에게, 하나는 양불회에게 남겼다. 위급한 상황을 벗어난 뒤에는 유서의 존재를 잊어버렸고, 퇴원할 때 간호사가 쓰일 일이 없었던 두 통의 유서를 장무기에게 넘겨 주었다.
사심으로, 장무기는 유서 두 통을 다 간직했다. 당연히 제 앞의 유서를 먼저 뜯어 보았다. 평범한 종이에는 앞 페이지에 꾹꾹 눌러썼던 글씨의 흔적이 깊게 패여 있었다. 글씨체는 평소 양소의 필적 그대로 안정적이고 평온했다. ‘똥강아지에게. 내가 죽고 나면 새로 좋은 사람을 만나렴. 은리는 안 된다. 근친혼은 유전적으로 안 좋아. 조민도 안 된다. 의심이 너무 많아. 소소도 안 된다. 걔도 만만치 않아. 내 생각에 주지약은 괜찮은 것 같다. 송청서한테 남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봐.’
마지막 한 줄은 썼다가 직직 긋고 칠해서 시커먼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장무기는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어 포기했다. 그는 제 앞의 유서를 치워 놓고, 불회에게 남긴 유서를 뜯었다.
남의 편지를 멋대로 뜯는 부도덕한 짓을 한 것에 대해 장무기는 십여 초 동안 자기 자신을 질책했다. 불회에게 남긴 유서는 장무기의 것보다 몇 배나 두꺼웠고, 크고 작은 온갖 일을 하나하나 쓰고 있었다. 양소는 심지어 딸에게 정기적으로 여성의학과에 가서 검진받을 것까지 당부해 놓았다. 유서 끄트머리에 양소는 이렇게 썼다. ‘착한 우리 딸, 아빠가 떠나고 나면 아빠를 생각해서 장무기를 좀 챙겨줘. 집에 모시고 와서 조상님처럼 받들지는 말고, 명절 되면 불러서 밥이나 같이 먹는 정도로. 불우이웃돕기 하는 셈 치고, 무기가 나이들어 너무 쓸쓸하지 않게 도와 주렴.’
우스웠다. 그러나 어느새 얼굴이 젖어 있었다.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디가 아픈지도 몰랐지만 너무 아팠다.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은 5시경에야 대광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하늘 끄트머리부터 흰 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장무기는 이제 정말로 해돋이를 보기는 글렀다고 확신했다. 후회스러웠다. 미리 기차표를 사 두고 무령산 근처 호텔에 방을 잡았다면 좋았을 텐데. 무령산에서 보는 해돋이도, 산허리의 구름도, 밤하늘의 별도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양소가 잊어버리기 전에 함께 보고 싶었다. 경치든 그 자신이든 양소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겨두고 싶었다.
양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방금 약을 먹은 참이었다. 캡슐이라 쓴 맛은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사탕의 포장지를 벗겨내고는 신속하게 장무기의 입에 집어넣었다.
장무기는 조건반사적으로 사탕을 도로 뱉어낼 뻔했다. 양소는 재빠르게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는 조수석에 기대 앉은 채, 장무기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아깝게.”
장무기는 딱딱한 사탕을 깨물어 부쉈다. 오독오독. 박하향은 유리병에 든 술이 유리 조각과 함께 흘러나오는 것처럼 시원하고 씁쓸했다. 입과 가슴이 박하향으로 가득찼다. 온통 쓰고, 온통 시렸다.
네온사인이 꺼진 휴게소의 진면목이 보였다. 간판의 페인트는 반쯤 벗겨졌고, 마트 외벽의 벽돌은 더러워져서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황폐하고 스산하고 아무런 생기도 없는 광경이었다. 주유소의 저속한 광고 현수막이 바람에 찢어져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는 속상해졌다. “해돋이는 못 보겠네요.”
양소는 웃었다. “내일 보면 되지. 시간이야 많은데.”
장무기는 누구보다도 곤혹스러웠다. 그는 양소의 병증에 대해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양소는 틀림없는 알츠하이머 환자였다. 그러나 증세가 없을 때는, 타인의 마음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기도 했었다. 그는 오래도록 양소를 응시했다. 시선이 양소의 얼굴을, 내리깐 속눈썹을, 눈가의 가는 주름들을, 우물처럼 새까만 눈을 마주했다.
양소는 차창을 열었다. 햇빛이 무지개처럼 열린 창틈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그의 몸을 덮어 물들이며 아른아른 빛났다. 샛노란 빛깔은 차 안을 구석구석 채우며 장무기의 마음 속 안개도 쓸어냈다.
길이 드디어 뚫렸다. 장무기는 액셀을 밟으며 안정적으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양쪽의 나무들이 벌떼처럼 다가왔다가 또 파도처럼 멀어져 갔다. 이제는 초조하지 않았다. 태양은 어쨌거나 태양이었고, 높은 하늘에 걸린 것처럼 그의 곁에도 내려와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여름의 시작이리라. 마음이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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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카페 : 자유, 실존, 그리고 살구 칵테일』은 실존하는 책으로, 한국에도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