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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서한

[팬픽션] 푸른 강가 누우니 어느덧 해는 저물고 3

저자 : 花楚
원문 : http://linegoe.lofter.com/post/2d359d_878b45f









젊었을 적의 황제는 한 번만 보면 무엇이든 외웠으며, 하루에 두 시진씩 자고도 정신이 또렷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늙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잠들어 있거나 비몽사몽의 혼돈에 빠져 보낼 정도로 늙어 버렸다. 그의 꿈은 안온하지 못하여 때때로 잠꼬대로 제가 죽인 사람들의 이름을 되풀이하고는 하였다. 깨어난 후에는 마음이 울적하니 또 사람을 죽였다.

거아!

드넓은 궁에 돌연 고함이 울렸다. 놀라 깨어난 황제는 똑바로 일어나 앉았다. 이마는 땀으로 가득했고, 두 손은 형체 없는 밧줄을 풀려 애쓰는 것마냥 목을 쥐고 있었다.

말해라! 무엇을 들었느냐?

놀라서 혼이 죄 달아난 노복들은 다급한 김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가리켰다. 폐하, 처, 천둥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깥에서 희미한 천둥소리가 두어 번 들려와 그렇게 대답한 노비의 곤경을 해결해 주었다.

구익부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때마침 그가 보낸 어린 황자 유불릉이 뛰어 들어왔다. 모자는 늙은 황제에게 한참이나 어리광을 부리다 둘이서 손을 잡고 뜰로 매화를 꺾으러 나갔다.

마침 이월이라 봄꽃이 만개해 있었다. 젊고 아름다운 구익부인은 한 가지를 꺾어 들어 손 가는 대로 화환을 만들어서 작은 불릉의 머리에 씌워 주었다. 그는 또 한 송이를 꺾어 제 비녀 옆에 꽂고는 고개를 돌려 황제에게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황제는 난간에 기대어 서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곽광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광록대부. 어린아이는 몇 살이나 되어야 어미와 떨어질 수 있을까.





원수 오년, 대한은 전에 없던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곽거병은 낭거서에서 봉선을 올려 북녘의 우환을 끊어냈고 조정은 염철을 전매하여 국고를 가득히 채웠다. 황제는 귀족과 권신들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장탕을 기용했고, 장탕과의 약속을 위해 다시 장청적을 발탁했다.

변장자卞莊子가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은 것은 우선 그것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덕이라 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의 황제는 하룻밤 사이 약관의 청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일군의 기랑騎郎을 이끌고 상림원으로 사낭을 나가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는 정말로 호숫가에서 물을 마시던 호랑이를 잡았다. 어린 호랑이로, 이마의 왕王 자마저 아직 털만 부숭할 뿐 모양이 완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이미 성년에 가까워 힘이 엄청났다. 어깨에 살을 한 발 맞고 너덧 마리 사냥개에게 물어뜯겨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나 몸부림을 치며 덤볐다. 황제는 적당한 때에 장검으로 호랑이의 심장을 찔러 죽일 셈이었다. 그러나 검을 뽑았을 때 그는 돌연 비틀거리더니, 호숫가의 진흙탕 위로 뻣뻣하게 쓰러졌다.

자객이다! 호위하던 우림군들이 즉각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황제는 어눌해진 발음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대, 대장군에게 어가를 호위하라고 명하라.

날 듯이 달려온 위청은 우림군을 지휘하여 황제가 있는 정호궁 주변을 물샐 틈 없이 둘러싼 뒤에야 전각으로 들어와 황제를 뵈었다.

어가를 뫼심이 늦었으니 신의 죄가 죽어 마땅합니다.

여전히 침상 위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황제는 고개만 끄덕거리더니, 다시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대장군이 있으니 누구도 감히 짐을 해하지 못하리라.

막 장년을 맞아 육체와 혼백이 모두 건강하던 황제는 홀연히 늙고 병들어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것 같은 꼴이 되었다. 어의는 몇 번이나 거듭하여 진찰했으나 아무런 상처도 발견하지 못했고, 어떠한 독이나 병도 진단해 내지 못했다. 삿된 술수가 있었다는 무의巫醫의 말을 좇아 몇날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법을 행해 보았으나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황제의 사냥에 따라갔던 사람들은 모두 정호궁 안에 연금되었다. 매일 아침과 정오, 그리고 저녁마다 머릿수를 헤아리는 점호가 있었다. 어린 낭관 하나가 늦잠을 자서 시각을 어겼다가 우림군에게 즉각 참살당했다. 피투성이가 된 그 작은 몸은, 곽광에게 가장 깊고 가장 오래된 궁정의 재앙으로 기억되었다. 그 아이의 죽음은 전쟁 때문도, 가난 때문도, 질병이나 노쇠 때문도 아니었다. 제왕의 권력에 짓눌려 죽은 것이었다.

오월이 반쯤 지났을 무렵 며칠 동안 뇌우가 이어졌다. 호숫가에 지어진 궁 안은 시원해지기는커녕 숨 쉬기도 어려운 답답함과 열기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다 문득 날이 맑아지자 황제도 약간 정신을 차렸다. 그는 들것에 실린 채 뜰에 나가서 한동안 연못의 물고기를 바라보았고, 신과 함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미앙궁에서 위청이 왔다. 그 무렵 그는 언제나 바쁜 걸음으로 총총히 떠나갔다 온갖 일을 먼지처럼 뒤집어쓴 채 돌아오곤 했다. 궁궐 문 앞까지 타고 온 준마는 문가에 두고 들어왔다. 의심 많은 병자가 행여나 말발굽 소리에 놀랄까 염려해서였다. 그는 예를 갖춘 후 고분고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태도로 말없이 호숫가에 시립했다. 관자놀이에 은은하게 땀이 배어나 있었다.

술법을 행하기 위해 황제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무당이 가리키는 대로 연기 나는 풀다발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얼마 못 가 지쳐서 낯이 창백해진 그는 고개를 돌려 위청에게 물었다.

조정 일은 다 무탈한가?

모두 평안합니다.

거아는 어떠한가.

태자 전하는 책을 읽고 예를 배움에 쉬는 일 없이 근면합니다.

장탕과 장청적 두 사람이 새로 일을 꾸미는 것은 없고?

두 대인은 각자의 직분에 충실할 뿐입니다.

서두를 것 없지. 짐은 피곤하군. 위청, 이리 와서 짐 대신 마저 하게.

신이 어찌 감히......

이리 와.

예.

위청이 제대로 항변하기도 전에 황제가 막무가내로 풀다발을 그의 손에 욱여넣었으므로, 그는 제단 앞에 꿇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 무당은 그의 머리에 질러 꽂았던 비녀를 빼고 관을 벗겨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던져 넣고는 알아듣지 못할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머리를 대신하여 관을 써서 신명에게 제를 올리는 것이었다.

위청의 까마귀처럼 검은 머리칼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는 어색한 기분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신은 우둔하여 폐하께서 신명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짐의 마음을 신명이라면 밝게 알아볼 터,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신의 죄가 죽어 마땅합니다.

황제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푹신한 침상에 누워 그대로 눈을 감았다. 위청은 줄곧 황제를 곁눈질로 보다가, 황제가 얕은 잠에서 깨어나려는 듯한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중경.

예, 폐하.

짐은 경황제께서 짐에게 내려 주셨던 금관을 불에 태워 신명께 세 가지 소원을 빌 작정이다. 첫 번째로 우리 한실이 번창하기를, 두 번째로 내 아들 유거가 어질고 효성스럽기를, 세 번째로는 대장군이 오래도록 장수하여 내 아들을 보좌해서 정치를 다스리며 나라를 창성하게 하기를.

폐하!

짐은 거리낄 것이 없으니 대장군도 더는 개의치 말게.

황제는 눈을 감고 손을 저었다. 삶과 죽음을 내려놓은 그는 평화롭고 편안해 보였으나, 어딘가 형언하기 어렵게 나이 들고 허약해 보이기도 했다.

위청은 눈썹을 찌푸리고 두 눈을 커다랗게 부릅떴다. 그는 일어서서 검을 뽑고는 다시금 황제 앞에 꿇어 앉아 두 손으로 검을 받들어 올렸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은 황제가 맹렬한 기세로 눈을 떴다.

어느 놈이 무엄하게ㅡ

그러나 그는 눈앞의 정경을 보고 다시금 굳어 버렸다.

신입니다. 폐하, 청컨대......

위청은 뭔가 말하려다 기어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초조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칼날을 움켜쥐었다. 핏줄기가 손바닥에 짧고 굵게 붉은 선을 그리고는 땅 위로 뚝뚝 떨어졌다.

청컨대 폐하......

잠시 굳어 있던 황제는 홀연 하늘을 올려다 보며 웃었다. 낮고 가늘어 거미줄 같은 웃음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흡족함이 묻어났으나, 기이하게 처량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는 검을 받아들어 무릎께에 올려 두고는 손가락으로 칼날의 핏자욱을 더듬었다. 천자가 하사한 장군검이었다. 날은 예리하기 비할 데가 없었고 황제는 병약해져 있었다. 손이 떨리는 바람에 손 끝에 가느다란 상처가 생겼다. 입으로 훑어내자 비린 맛이 엷게 입술에 감돌았다.

되었다. 그래도 곽거병이 있어 다행이지. 자네가 아직 다 가르치지는 못했으나 족히 쓸 만은 할 것이고. 거아는, 짐도 그 아이를 다 가르치지 못했으나, 역시 쓸 만은 할 것이다.

황제는 푹신한 수레 위에 누워 마치 잠든 것처럼 보검을 헐겁게 쥐고 있었다. 빈 칼집을 들고 있던 위청도 멈추어 서서 곽광에게 낮은 소리로 몇 마디 분부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해가 질 무렵 난각에 있던 황제는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곽광, 대장군이 네게 뭐라 하더냐?

물가는 음습하니 어가를 안으로 모시고 폐하를 쉬시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장안에 돌아가지 않고 폐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 올 수 있도록 기다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대장군은…… 대장군은, 오늘 소신이 보고 들은 것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이며, 다만 표기장군이 간절하게 재삼 묻거든 간단하게만 말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흥. 다 대비를 해 놓았다 이거군. 대장군이 오늘 짐에게 무엇을 청한 것인지 알겠느냐?

황제는 곽광을 응시했다. 노기는 없었으나 윽박과도 같았다. 눈빛이 횃불처럼 타올랐다. 아직 어렸던 곽광은 그처럼 황제의 눈을 마주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겁에 질려 도망치듯 고개를 저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끄덕거렸다.

공훈은 천하를 덮었고 지위는 인신의 극에 달했다. 위청이 손을 내어 황제에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죽음 외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옛날 위기후 두영이 옥중에 갇혀 경황제의 유조를 꺼내 들었을 때, 젊은 황제가 시중 위청에게 명해 은밀히 전했던 말이 사마천의 책에 실려 있다.

천자의 위엄이 굴복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두영을 죽이면 조카의 인륜을 어기는 것이요, 두영을 죽이지 않으면 종묘사직을 저버리는 것이다.

제왕은 사람이었으나 나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국가와 천하에 대한 경애와 숭앙을 그의 한 몸에 투사하여 이겨내지 못할 높이까지 떠받들고는, 온갖 교활한 권모술수와 삼엄한 율법을 모조리 냉혹하고 무정한 그의 탓으로 돌려 비난했다.

뜨거운 볕이 찬란하던 그 날 오후에 황제는 농담을 하듯이 탁고를 예행 연습해 본 것이었다. 그것이 신임인지 시험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훗날 곽광은 문득 생각했다. 만일 그 때 위청이 진짜 탁고대신이 되었더라면 어떤 광경이 펼쳐졌을 것인가.

태자이자 저군으로서의 유거는 아버지의 웅대하고 잔혹한 그림자 아래 언제나 온아하고 상냥한 모습이었다. 그는 형벌을 가벼이 하고 어진 이들을 모았으며 화목을 도모했다. 아버지의 강대한 권력 아래 찢겨나간 민심을 기우고 외숙부와 사촌 형의 말굽에 뒤집힌 땅을 바루는 일에 줄곧 힘썼다. 백성들은 싸움과 살육을 좋아하는 황제를 두려워하고 꺼리다가도 그들의 태자에게서 앞날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군왕으로서의 유거는 어떠했을까? 위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디딤돌에서 걸림돌로 전락했을 때, 그는 좋은 조카와 좋은 천자 중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





정호궁의 여름 밤은 고요했지만 병든 몸을 늘어뜨린 황제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유성마 한 필을 불러다 놓았으나 날이 밝을 때까지도 미앙궁으로 가는 전갈은 없었다. 전위와 탁고의 일은 그렇게 흐지부지되어 다시는 이야기되지 않았다.

곽광은 바로 곁에서 황제를 모셨다. 황제의 두 눈은 맑아졌다 다시금 흐려지며, 실낱 같은 생기만 남을 정도로 혼탁하고 희미해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무어라 입 안에서 같은 말을 중얼중얼하고 있어 모시는 자들이 다가가서 들어 보면, 등이 어둡다거나 벌레가 운다거나 바람이 차다는 말들 뿐이었다. 그는 집요하게 하늘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이긴 것은 그였다. 그 날 이후 황제는 하루하루 병세가 좋아져 입추 즈음에는 큰 차도가 있었다. 황제는 감천궁에 행차하여 신에게 사례하고자 했다. 밖으로는 가을 사냥이라는 명분을 댔으므로 여러 신하가 모두 모여 떠들썩했다.

이런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결국 대한의 두 대사마였다. 곽거병은 제일 앞에서 일군의 장군들과 우림군을 이끌고 병사를 나누어 포진시켜 짐승들을 포위했다. 위청은 낭관과 호분虎賁들을 이끌고 황제를 시위하고 있었다. 들떠서 열을 올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는 이상하게 여유로웠다. 심지어 느긋하게 대오에서 뒤떨어져 어린 낭관들에게 산과 강의 형세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부스럭거리듯 떠드는 소리들이 시작되었다. 봐, 영 기분이 안 나시는 모양이지. 원래 어린 놈이 오면 늙은 놈은 자리가 없는 법이거든. 천자의 측근 노릇이나 하는 수밖에.

그러나 그의 여유는 그다지 오래 가지도 못했다. 앞쪽에서 상냥하지도 싸늘하지도 않은 질문이 던져졌다.

중경은 왜 활을 들지 않는가.

부끄럽습니다, 폐하. 아직 사냥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젊을 적에는 몇 리나 떨어진 눈밭을 뛰는 흰토끼도 잘만 보더니, 몇 살이나 되었다고 눈이 흐려졌나? 바깥에서 큰 싸움을 많이 치른 탓에 짐의 작은 놀이판은 성에 차지 않는 것이겠지.

신의 죄가 죽어 마땅합니다.

앞에서 곽거병의 무리가 숲자락을 둘러싸고 점차 좁혀 들어가고 있었다. 트인 곳은 한 군데 뿐이었다. 포위망이 좁아지면서 홀연 어지러운 소리가 울리더니 수많은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숲에서 뛰쳐나왔다.

황제는 하늘에서 아래를 엿보듯 선회하는 송골매를 가리키며 위청을 바라보았다.

저 송골매가 흉노일세.

위청은 현을 당겨 활을 쏘았다. 화살은 구름을 찢고 하늘을 가르는 기세로 송골매의 머리에 박혔다. 그러나 송골매는 바로 추락하지 않고 공중에서 몇 번이나 발버둥치며 오르락내리락한 뒤에야 떨어졌다.

못 쓰겠군.

위청은 활을 내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황제의 낯빛은 더욱 시퍼래져서 눈 두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사냥개가 반쯤 죽은 송골매를 물고 오자 개를 돌보는 노비가 간단히 깃털을 다듬으려다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대장군이 눈을 맞혔습니다!

사방을 둘러싼 호분군들이 귀가 터져 나갈 것처럼 환호성을 올렸다. 경기 일대에서 번을 돌며 변방의 전장에 나가 본 일 없는 젊은 병사들은 그 순간 마치 막북의 절벽에 선 것 같았다. 눈앞의 송골매는 숨이 막 끊어진 흉노 대선우의 시체였다.

흉노는 망한다! 대한이 이긴다! 늠름하신 대장군! 늠름하신 대장군! 늠름하신 대장군!

황제의 친위군이었다. 대사마부 관할도 아니거니와 위청을 따라 출정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 나이의 군인들에게 대장군은 천신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한 마리 사슴처럼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만일 그 때 위청이 병사들에게 한 마디만 호소한다면 황제의 명은 경각에 달리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는 오만하고 태연한 태도로 준마의 등에 높이 올라 앉아, 위청이 제 손으로 그 ‘흉노’ 송골매를 들어 바치기를 기다렸다.

사람이 죽었다!

돌연 끔찍한 고함소리가 숲에서 터져나왔다가,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목이라도 베인 것처럼 뚝 끊겼다. 황제의 얼굴에 있는 듯 없는 듯 기묘한 웃음이 실낱처럼 스쳤다. 그는 말을 돌렸다. 곽거병이 단기로 천천히 나아오고 있었다. 말등에는 잿빛 갑주를 차려입은 몸뚱이가 가로로 놓였다. 투구와 갑옷이 맞물리는 부분, 인후에 화살이 곧게 박혀 있었다.

신 곽거병, 실수로 관내후 이감을 쏘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폐하께 나아와 죄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