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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삼국

《신 삼국》 노숙 역 곽청 인터뷰

원문 : 성도만보

괄호는 전부 역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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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에는 여러 인물들이 있는데, 노숙을 연기하기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당시 주요 캐릭터들은 거의 (배우가) 정해져 있었어요. 각본을 다 읽고 나서 노숙으로 결정했는데, 겉보기에는 품위 있고 점잖으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당겨 잡는 힘이 있는 그런 캐릭터죠. 제가 좋아할 만한 부분이 많았어요. 굴욕을 참으면서 책임을 짊어지고, 가슴 밑바닥에는 오만과 호기가 있지만 결코 드러내지 않는. 노숙의 몇몇 부분은 저와도 무척 닮았습니다.

처음에 각본을 읽었을 때는 어떤 역을 가장 연기하고 싶으셨나요?

유비입니다. 처음 구판 드라마(1994년판 《삼국연의》)를 봤을 때, 보면서 줄곧 나라면 유비를 이렇게 이렇게 연기할 텐데, 하고 생각했었죠. 그 때는 굉장히 유비를 해 보고 싶었어요. 유비는 보여주기 좋은 캐릭터죠. 큰 결점이 없습니다. 연기할 때 장면 하나 하나를 파고들면서 연기자가 재량을 발휘할 공간이 많아요.

지금 고희희 감독이 마침 영화 《삼국 : 형주》를 준비하고 있는데, 유비 역을 따내 볼 생각은 없으세요?

기회가 닿아야겠죠? 만일 노숙을 다시 연기하게 된다면 좀 더 승화시켜서 해 보고 싶습니다. 유비를 연기할 수 있다면 저 나름의 이해를 통해 해석해 볼 거고요.



제갈량이 주유를 문상하는 장면에서는 육의(제갈량 역) 씨와 막상막하였다는 평이 많은데요.

그 장면은 연기자의 내공을 엄청나게 요구하는 부분이었어요. 진심으로 울 것 같은 와중에도 대사의 억양을 다양하게 바꿔 가면서 보는 사람을 감동시켜야 했으니까요. 후시녹음을 굉장히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현장에서의 효과를 주려고 노력했는데, 저는 항상 현장에서의 목소리가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사실은 더빙 감독도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원래 녹음을 쓰자니 동시녹음본을 자세히 들어보면 잡음이 있고, 몇몇 대사만 갖다 쓰면 다른 부분과 섞여들지 못하고요.

어느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후반부 장면은 전부 다 좋았어요. 시청자 여러분도 뒷부분으로 갈수록 노숙을 더 좋아하게 되실 거라 믿습니다. 주유 문상이나 단도부회(관우와의 연회) 같은 장면들에서 노숙의 품성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며 점차 고조되어 가죠. 단도부회 장면에서는 정말 심혈을 기울였어요. 그 때 노숙은 병이 골수에 스며들어 굉장히 허약해져 있는데, 그런 상태가 되기 위해서 사흘을 굶고 하루에 20km씩 뛰었죠.



《삼국》에서 동오 파트가 제일 재미있다는 의견이 많은데요. 노숙과 손권, 주유, 제갈량이 맞붙는 장면들은 굉장히 멋있죠. 구판과 비교하면 노숙은 달라진 점이 많더군요.

우선 각본이 좋아요. 주소진朱蘇進 선생님이 동오 파트를 굉장히 근사하게 써 주셨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삼국》의 전반부는 조조에 편중되어 있고, 30화 후부터는 형주, 후반부는 동오에 편중되어 있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굉장히 멋있게 각색된 부분들도 있습니다. 노숙처럼요. 구판에서의 노숙은 순박하고 우둔하면서 성실한 사람이었죠. 그에게 열쇠꾸러미를 한아름 안겨 준다면 큰 가문의 집사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신판 노숙은 다릅니다. 언변에 능하고 모략을 꾸밀 줄 아는 재상의 재목이죠. 구판은 노숙에게 큰 비중을 주지 않았지만, 신판에서는 노숙이 어떻게 오나라를 위해 유비와 연합하고 조조에게 대항했는지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연기한 노숙은 시청자들에게 '사상 최고의 능력자 노숙'이라는 평을 듣고 있죠.

《삼국》에서는 역사적 인물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숙은 대단한 책략가이자 능력 있는 사람이었고 뛰어난 정치가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노숙을 좋아하시는 건 표현이 잘 되었다는 것보다도 현대 사회에서 이런 인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인물들을 확대시켜 남김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독백에 가까운 연출은 캐릭터를 풍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연기자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방대한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노숙은 팔이 밖으로 굽는 것 같다, 고비마다 제갈량을 비호하고 유비를 돕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표면만 본 것이지요. 노숙이 굴욕을 참으며 책임을 짊어지면서 했던 모든 일은 나라를 위해서였어요. 저도 연기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사실은 노숙에 대한 글을 한편 써 보고 싶지만 그 시기 역사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썼다가는 강좌를 열어야 될 거예요.



화살 빌리기가 방송되기 전에 육의 씨가 그 장면을 추천했었는데, 드라마나 인물들의 디테일한 장면이 없어서 그냥 맹물 같았다는 의견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화살 빌리기는 아주 고전적인 장면이죠. 그런 만큼 여러분의 기대치도 높았을 거고요. 저희는 정말 최대한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뒷이야기나 고생까지 시청자 여러분이 보실 수는 없죠. 연기자는 연기만 할 뿐 모르는 부분이 많고요. 아주 많은 것들, 특히 (촬영) 중후반부에 불거진 여러 문제들을 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감독님이 이를 악물고 견뎌내서 이 드라마를 끝까지 찍어냈다는 것에 정말 경탄했어요. 정말로, 드라마를 잘 찍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능력과 기술이 있다고 해도 돈이 없으면 방법이 없는 거죠.

제갈량은 유비의 군사가 된 후 짧은 기간 동안 연속 세 번 조조를 화공으로 패배시키는데(박망파, 신야, 적벽), 《삼국》에서는 적벽만 묘사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시청자도 있었습니다. 박망파와 신야가 빠진 것도 자금 부족과 관계가 있나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만 말해 둘게요. 여러 드라마 제작진과 일해 왔지만 《삼국》 제작진이 가장 가난했어요. 어떨 때는 운전기사님 차에 기름을 넣을 수가 없어서 스태프들에게서 돈을 걷기도 했었죠. 이런 객관적 괴로움은 여러분이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갈우葛優 씨와 말하는 스타일이 닮았다, 생긴 것도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본인 생각엔 어떤가요?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이 저와 갈우 씨의 사진을 비교해 놓은 걸 봤어요. 처음으로 목소리가 닮았다는 말을 들은 건 후시녹음 때인데, 더빙 감독님이 "이 대사랑 이 대사 너무 갈우 같아"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녹음했죠. 아마 저와 갈우 씨 모두 연극 출신이라서 발성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갈우 씨와 아는 사이세요?

공교롭게도 중희 졸업 후에 찍었던 첫번째 필름 영화 《도망》에서 함께 일했습니다. 오래 전 일인데 연락은 줄곧 하고 있었어요. 이번 작품 전에는 한 번도 닮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요.

프로필을 보니 10년 동안 사업을 하셨다고 하던데, 결국 연기자로 돌아오신 이유는 뭔가요?

정말 좋아하니까요. 사업은 먹고 살기 위해 한 거였고요. 하지만 가끔은 사업 상담을 하다가도 무심결에 TV 드라마가 보이면 정신이 쏠려서,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연기했을까 상상하곤 했습니다. 차를 몰고 가다가 야외 촬영을 마주치면 차를 한 켠에 세워놓고 반나절을 구경했죠. 연예계로 다시 돌아온 뒤 얻은 최대의 수확은 안건安健과 몽계夢繼 두 분 감독을 만났다는 겁니다. 몽 감독과는 우선 《하늘에는 눈이 있다》를 함께했고 그 다음으로 《사라진 먼지떨이》를 찍었죠. 몽 감독은 저에게 남주인공 경한량 역을 맡겼는데 방영 후에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아서 연기를 하겠다는 신념을 굳힐 수 있었어요. 그리고 고희희 감독과의 만남은 제 연기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이 당신의 연기를 한층 더 끌어올려 준 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삼국》은 분명 기회였어요. 좋은 연기자는 모두 연기의 황금시대가 있는데, 제 황금시대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은 시간과 기회가 더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