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御风少年张二狗님의 의천도룡기 2019 팬픽션입니다. 커플링은 장무기x양소.
한국어 번역 게재를 허락받은 글로, 타처 전재는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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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 아저씨, 안녕하세요. 얘는 아저씨 딸이에요. 불회야, 얼른 이리 와. 네 아버지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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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좌망봉에 왔을 때의 양불회는 바보 같았다. 바보처럼 오물거리며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고, 온종일 먹고 놀고 자는 것이 전부였다. 양소는 딸이 조금 늦된 것일까 의심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너무나 컸다. 그래서 양소는 애인이 남긴 사랑의 결정이자 유일한 핏줄을 바라보며 속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삼키고는, 하늘에 있을 기효부의 영혼에 맹세했다. 자신에게 숨이 붙어 있는 한 딸을 무사히 키워내는 데 온 마음을 다 쏟겠노라고.
피가 이어진 부녀지간이라서인지 양불회는 양소를 몹시 따랐다. 거의 양소의 꼬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매일같이 양소를 끌고 나가 뜰에서 놀았다. 양소는 딸의 둥근 부채를 쥐고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양 나비를 잡아 주며 속으로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와 상호 소통을 하다 보면 온종일 할 일이라고는 없는 후궁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딸을 기쁘게 해 주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 양불회가 강아지풀을 엮어서 시푸르뎅뎅한 화환을 만들어 주면 고분고분 머리에 쓰고 하하 웃는 수밖에 없었다.
더위가 가고 추위가 지나는 사이 양불회도 조금 자라서 꾸밈과 미용에 관심을 가졌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홀아비 양 좌사는 딸에게 꾸밈당할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연습 도구로 전락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양불회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몹시 많았다. 양소가 타고나길 잘난 탓에 연습할 만한 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얼굴에 엷은 연지를 조금 발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소의 머리는 얼마든지 꾸며볼 수 있었다. 양소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었다. 말총머리도 해 봤다가, 틀어 올려도 봤다가, 각종 장식이 달린 진주 떨잠이며 옥비녀도 숱하게 달아 보았다.
“됐다.” 단장을 끝낸 양불회가 거울을 들고 보여주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빠 시집가도 되겠네요.”
양소는 아연한 얼굴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자포자기하듯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 딸이 착해서 나를 봐 준 것이다. 치마를 안 입히는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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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는 장신구를 달고 화장을 한 채로 명교 사무도 처리했다. 본인은 이미 무감각해져서 전혀 이상한 줄 몰랐으나, 다른 명교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와 삐거덕거리는 주전이 고소하다는 듯이 웃으며 큰 소리로 조롱했다. “아이고, 우리 양 좌사의 눈부신 미모가 아주 온 천하를 뒤흔드네!”
양소는 주전의 유치한 도발에 코웃음을 치더니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게도 미추는 길이 달라 양립할 수 없는 법, 자네가 나를 마음에 두었다 한들 우리가 함께할 수는 없다네.”
주전의 얼굴은 열이 뻗쳐서 시퍼레진 나머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시금치 만두처럼 변하고 말았다.
양소는 속으로 냉소했다. 상대도 안 되면서 멍청하게 덤비기는. 행여나 불회가 보기 전에 어디다 치워 둬야지. 귀한 딸이 저 꼴을 봤다가는 얼마나 놀라겠는가.
3
훗날 양불회는 자라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딸의 혼인날 양소는 기효부의 무덤 앞에 밤새도록 앉아 있었다.
“우리 딸이 이제 다 컸어. 아주 똑똑하고, 뭐든 잘해. 심미안에 조금 문제가 있기는 한데.” 그는 마음속으로 기효부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나도 할 만큼 한 것 같아.”
“하지만 아이 하나를 어른으로 키워내는 건 정말 심혈을 쏟아야 하는 일이더군.” 그는 진지하게 덧붙였다. “이제 더는 자식을 낳아 기를 일이 없을 테니 다행이야. 나더러 또 애를 키우라고 하면 차라리 좌망봉에서 뛰어내리고 말겠어.”
4
갓 광명정에 왔을 때의 장무기는 얼치기 같았다. 얼빠진 얼굴을 하고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고, 온종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소 아저씨’를 불러대는 것이 전부였다. 양소는 이 소년 교주가 조금 늦된 것일까 의심해 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명교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양소는 고강한 무공을 지닌 명교의 빛이자 희망의 불씨를 바라보며 속으로 충성을 다짐하고는, 하늘에 있을 양정천의 영혼에 맹세했다. 자신에게 숨이 붙어 있는 한 국궁진췌의 각오로 교주를 보좌하여, 명교가 다시금 휘황하게 빛나도록 만들겠노라고.
막 태어난 새끼 동물이 처음 본 어른을 따르는 것처럼, 장무기는 양소를 몹시 따랐다. 거의 반 발짝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 정도로 매일같이 양소를 끌고 다니며 온갖 회의를 열었다. 양소는 경건하고 엄숙한 얼굴로 앉아서 각종 건의사항을 진지하게 듣는 척했으나 마음은 영 뒤숭숭했다. 그 오랜 세월 후궁 노릇을 하며 궁중 암투를 버텨낸 끝에 드디어 태후가 되고야 만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무슨 일이건 지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다.
“양 좌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무기의 새까맣고 또렷한 눈이 똑바로 그를 응시했다.
“교주님 뜻대로 하시지요.” 양소가 말했다.
세월은 살처럼 흘러 장무기도 조금 자라서 혼자 일을 처리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양소는 여전히 수렴청정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장무기는 제일 먼저 그의 의견부터 물었으므로, 밖에서 보면 양소가 만사를 결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부귀영화도 우스웠고 왕후장상도 부럽지 않았다. 교주님 혹시 남색이라도 하시나?
5
장무기는 양소가 일부러 거리를 두는 것에 불만이 몹시 많았다. “양소 아저씨, 자꾸 그러지 마시고 그냥 무기라고 불러 주세요.”
양소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교주님은 교주님이시지요.”
“저를 정말 교주로 여기시는 거라면 제 말은 무엇이든 들어 주시겠네요?”
양소는 정중하게 답했다.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장무기는 약간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교주로서 좌사에게 명령할 테니까, 무기라고 불러 주세요.”
훗날 양소는 이런 권력의 사적 남용을 ‘직장 내 패륜 행위’라고 불렀으나, 당시에는 고분고분 그 말대로 따랐다. “무기.”
“네.” 방긋 웃는 장무기의 눈이 초승달처럼 둥글게 휘었다.
6
명교의 장 교주 하면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무공은 고강하나 마음이 순진하여 권력 투쟁의 제물이 되었다, 대마두 양소의 손아귀에 든 꼭두각시나 다름없다, 교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양소의 칼날이라는 것이었다.
온 명교에 소문이 파다할 때 대마두는 저 혼자 투덜거렸다. 내가 권모술수를 써서 교주 자리에 앉을 거라고? 장무기 그 녀석이야말로 내 침대에 누울 생각뿐인데.
장무기는 그 소문을 몹시 불쾌하게 여겼다. 그는 냉겸에게 명해서 엄한 벌을 내리게 하여 유언비어의 씨를 말렸다.
“양소 아저씨가 권력을 차지하려고 온갖 책략을 꾸미고 있다잖아요. 저는 그런 말 안 믿어요.” 장무기가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아저씨가 원하시는 게 무엇이든 기꺼이 해 드릴 텐데요. 그까짓 교주 자리가 다 뭐라고.”
그 표준적인 혼군 발언에 양소는 겸손하게 답했다. “과분한 말씀 황송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끝장이다. 이제는 정말 나라 망치는 요물이라는 소리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7
곱고 잘난 얼굴, 젊은 나이와 뛰어난 능력, 겸손 신중 온화 선량한 성격. 솔직히 말해 장무기는 연애 시장의 희귀자원이라 할 만했다. 양소가 그에게 정말 아무런 감정 한 톨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양소는 평생을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나이 성별 신분 지위 따위는 의미 없는 것임을 잘 알았고, 때맞춰 누리는 침상의 즐거움은 더 잘 알았다. 그가 장무기의 구애를 받아들인다 한들 도덕의 경계를 넘어 금단의 애정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고단수 내숭쟁이처럼 장무기에게 곁을 내줄 듯 말 듯 굴고 있는 것은 장무기가 정말로 순진 성실 얌전 착실한 부끄럼쟁이이기 때문이었다. 양소 정도 되는 곤륜산 여우로서는 실컷 놀림당한 끝에 귀 끝이 빨개지는 장무기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저씨, 뭘 걱정하시는 거예요?” 장무기는 자꾸 물어왔다. “저와 나이가 안 맞아서 남들이 비웃을까봐 그러세요? 아니면 불회가 반대할까봐?”
양소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무기는 간절하게 말했다. “제 고백을 거절하시려면 이유라도 말씀해 주셔야 제가 단념하죠.”
양소는 멈칫했다. 네가 언제 고백을 했어? 금시초문인데. 그러나 굳이 말해 달라고 조르는 데야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잠시 침묵한 끝에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플까봐서요.”
장무기는 양소가 그에게 날아들던 온갖 공격을 분연히 나서서 가로막던 모습을 떠올렸고, 의혹에 빠져들었다. “뭐라고요?”
양소는 느릿하게 말했다. “경험이 없으시니까, 아무래도, 기술도 안 되실 것 같고.”
장무기는 새빨개졌다가 새하얘지기를 반복하더니, 한껏 허세를 부리며 헛기침을 했다. “저는 물정을 모르고 견식도 얕으니 아저씨가 세심하게 이끌어 주셔야지요.”
양소는 말했다. “긴지 짧은지 대 보지도 못했는데 탁상공론을 해 봐야 어디에 쓰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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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양 좌사는 명교 교주 장무기를 뛰어난 어른으로 키워냄으로써 육아 경력을 원만하게 마무리하고 교주의 가족으로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던 것이니,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