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蓝茵님의 드라마 쌍면신탐 팬픽션입니다. 커플은 왕대우X서무쌍. 한국어 번역 게재를 허락받은 글로, 타처 전재는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람 하나를 외근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기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왕대우가 미처 눈치채기 전, 서무쌍은 벌써 제대로 손을 써 놓았다.
조직의 행정 업무에는 수사 진척도와 무관하게 바쁨과 한가함이 교차하는 나름의 리듬이 있기 마련이다. 팽파는 아직 수성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지 않았고, 9월이 범죄보다 한 발짝 먼저 도착했다.
“3분기 결산, 4분기 주요 중점 사업 진행 현황, 현장 탐문 및 조사 기록,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데…….” 머리를 높이 올려 묶은 여형사는 신난 목소리를 길게 끌며 문서 보관함을 왕대우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내년 예산 편성안. 잘 부탁한다~”
형사치고 문서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서무쌍, 나욱동, 제염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기꺼이 자원시킬 수 있는 신참 동료가 있었다.
왕대우는 워드 프로세서와 업무 자동화 시스템 사이에서 사흘 동안 헤맸다. 털끝만큼도 전진하지 못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나아갈 길이 보인다고도 할 수 없었다. 경애하는 그의 형 대대장이 사건 종결 보고서를 재촉하러 어슬렁어슬렁 찾아왔다. 그는 텅텅 빈 사무실에 풀이 죽어 고개를 푹 숙인 골든래트리버 한 마리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선량한 마음에서 한마디 말을 붙였다.
바로 그 한 마디 때문에 골든래트리버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형 대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먼젓번 일은 제 잘못이에요. 형 대장님이랑 서 대장님 앞으로 반성문 쓰겠습니다. 오천 자, 아니 아니, 일만 자 쓸게요. 앞으로는 반드시 명령에 복종하고 지시에 따를 것이며, 서 대장님이 가라는 대로 가고 있으라는 곳에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 좀…….” 거기서 드디어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이왕 도와주실 거면 끝까지 도와주셔야죠!”
청년이 두 손을 합장하듯 모으고 눈을 깜박이며 귀요미 공격을 퍼부어대니 형국량은 당해내기가 어려웠다. 멍멍이 사무실로부터 전술적 퇴각을 시행한 형 대대장은 재삼 망설이고 머뭇거린 끝에 결국 서무쌍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한참 울린 뒤에야 통화가 되었다. 형국량은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서무쌍…….”
건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나욱동 녀석의 것이었다. “아, 형 대장님. 안녕하십니까.”
형국량은 미간을 찡그렸다. 서무쌍이 그의 전화를 피했던 것은 아주, 아주,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 마지막이 아마…… 늘 사랑스럽게 웃고 있던 젊은이의 얼굴이 다시금 뇌리에 떠오르며 생각이 딴 길로 샜다.
“너희 형님은?”
“단서 쫓으러 갔죠. 저더러 폰 좀 갖고 있으라고 해서요. 형 대장님,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이따 전하겠습니다.”
형국량은 서무쌍을 지나치게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이렇게만 말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전화하라고 해.”
상대방은 흔쾌히 대답하더니 불같은 속도로 끊었다.
형국량은 약속받은 응답을 하루 또 하루 기다렸다. 이른바 약속이 물에 비친 달그림자임을 확신했을 무렵, 커다란 골든래트리버의 형사팀 업무 총괄 보고서는 이미 이제더는못고침(Ver. 03)에 이르렀다. 대대장은 기댈 곳 없는 멍멍이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금 그의 사육사를 데려오려 시도해 보았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또 나욱동이 깍듯하게 전화를 받았다. “형 대장님, 화내지 마시고요. 막 체포할락 말락 하는 결정적 단계 아니겠습니까. 서 대장님도…….”
형국량의 어조에는 위협이 담겼다. “생각 잘하고 다시 말해라.”
헤헤 웃던 소리가 뚝 끊겼다. 한참 침묵한 끝에 전화기 건너편에서 미미하게 가라앉은 서무쌍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국량.”
형국량은 일순 다른 데로 주의가 쏠렸다. “또 담배 피웠어?”
“무슨 일이야? 바쁜데.”
“나한테 그런 수작은 부리지 마라. 나욱동, 나욱동!”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과연 대답이 큰 소리로 들려왔다. “예, 여깄습니다.” 목소리는 금세 다시 작아졌다. 서무쌍이 전화기를 든 채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쟤랑 무슨 상관이 있어. 내 앞에서 내 사람을 괴롭히겠다고?” 서무쌍의 목소리에는 억지로 기운을 끌어올린 듯한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형국량은 자연스레 말을 받았다. “여기도 네 사람이 하나 있다만. 잊으면 안 되지.”
서무쌍은 일순 침묵하더니 말했다. “내 알 바 아니야.”
“그런 법이 어딨어? 요만한 어린 것이 너밖에 모르는데, 키우다 말고 나한테 내던지는 게 말이 돼? 내 말 잘 들어. 요즘은 제자 아니라 어디서 개나 고양이를 데려와도 죽는 날까지 돌봐야 하는 법이야. 인민경찰이 되어서 사람을 실컷 갖고 놀다 내버리다니…….”
서무쌍은 기가 차서 웃음이 터졌다. “갖고 놀다 내버려? 어디서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만큼 커다란 왕대우가 콰당 하고 형사팀 대대장의 사무실로 뛰쳐 들어오며 책상과 의자에 소형 지진을 일으켰다. “서 대장님!”
청년은 한 손으로 형 대장의 팔을 붙든 채 전화기에 대고 서럽게 외쳐댔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화내지 마세요 저 버리시면 안 돼요 지금 어디 계세요 요 며칠 비가 와서 날도 추워졌는데 겉옷도 안 가져가셨잖아요 찬바람 쐬시면 안 되는데 제가 옷이라도 갖다 드릴…….”
대대장 사무실 벽에 들러붙어 있던 그의 행위에 형국량은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그는 손을 휘둘러 어린 놈에게 꿀밤을 먹였다. “너는 학교에서 도청만 배웠어?”
도청과 난입 때문에 끊긴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형국량은 일순 원래 화제를 잊어버렸다. “어쨌거나 왕대우는 좋은 형사가 될 만한 소질이 있어. 너도 모르는 거 아니잖아. 예민함, 친화력…….” 그는 자신이 수년 전에도 서무쌍에게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 그들은 다른 청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무쌍이 말을 끊었다. “이 바닥에 있는 사람 치고 소질 없는 사람도 있나? 그런 건 말할 거리도 못 돼.”
소질이 있다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다. 둘 다 훤히 아는 바였으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몇 번을 고치고 고친 끝에, 왕대우는 드디어 업무 자동화 시스템에 형사팀의 불법조직 소탕 프로젝트 홍보물 원고를 업로드했다. 그날 곧장 사무실에서 통지가 왔다. 그의 원고가 다음 호 수성시 공안국 매거진에 실리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시국市局 정책연구실의 대선배가 친히 방문해 형국량 앞에서 젊은이의 칭찬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이리 시야도 넓고 글솜씨도 대단하다니, 참 보기 드문 일이라면서.
한바탕 인사치레가 오간 뒤로는 하는 말마다 사람 좀 빌려달라는 뜻이 훤히 보였다. 형국량은 원 국장의 이름을 내다 팔았다. 원 국장이 청년을 신안분국에서 몇 년쯤 단련시킬 생각이라는 말에 상대는 결국 마음을 접었다.
왕대우는 손님을 접대하는 내내 영업용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자신이 방금 쇠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고 왔다는 것은 털끝만큼도 몰랐다. 조금만 삐끗했으면 골든래트리버는 식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시국 선배를 배웅한 형국량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내가 몰라봤네. 문서 작업도 잘하는구먼.”
‘서대’라는 이름의 물줄기를 못 맞은 지 오래된 왕대우는 절인 배추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이제 알겠어요. 서 대장님이 저처럼 아무 경험도 없는 새내기를 믿어주실 이유가 없죠. 서 대장님이 저를 진정한 한 사람의 형사로 보게끔 만들려면 저 자신의 능력으로 증명해 내야 하는 거예요. 대뜸 처음부터 저를 믿으라고 하는 게 아니고요. 문서 작업이건 내근 업무건 제가 훌륭한 형사가 될 수 있다는 증명의 일부니까요. 불평 안 해요. 서 대장님이 말씀하시면 뭐든 힘껏 배우고 잘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젊은이가 그런 말을 쏟아놓는 데에 형국량은 조금 놀랐다. 왕대우가 팀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는 청년의 집안 배경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평생 순풍만 받으며 자라온 귀한 댁 아드님이 어쩌다 바닥부터 기어 올라갈 결심을 했을까?
“그럼…….” 형국량은 웃어 보였다. “내근 담당자 선생을 모셔다 사부로 삼는 건 어때?”
조금 전까지 굳건한 표정이었던 대형견이 펄쩍 뛰어올랐다. “안 돼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고요! 저는 서 대장님만 사부로 모실 거예요!”
팽파의 체포가 늦어지면서 건강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서무쌍의 수많은 악습관 역시 되돌아왔다. 임시로 잠복 중인 폐공장은 밤이 되면 몹시 추웠다. 그는 가만히 발을 동동거렸다. 잊지 말고 겉옷을 챙겨가라던 왕대우의 말이 이제야 떠올랐다.
어쩌면 그는 뛰어난 형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무쌍은 다시 한번 상실을 겪을 배짱이 없었다.
유리컵 울리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렸다. 제염이 구기자차를 옆에 내려놓은 것이다. 서무쌍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보았다. 컵은 아주 뜨거웠다. 굳어 있던 손가락의 통증이 열기 속에서 조금씩 녹아내렸다.
제염이 뭔가 말하려다 삼키는 것을 못 본 척, 서무쌍은 말했다. “네가 분국에 한 번 다녀와. 움직일 때마다 팽파가 미리 도망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중대한 의혹이었다. 그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제염이 답하기 전에 전화기가 진동했다. 화면에 형국량의 이름이 떠 있었다. 서무쌍이 전화를 받자 형 대대장은 드물게도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최근 사건에 관해 왕대우가 생각한 바가 있다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너와 말해 보는 게 낫겠어.”
서무쌍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건너편에서 다른 사람이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먼젓번 그가 화를 낸 뒤로 청년은 여태껏 그와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겁먹고 움츠러든 목소리였다. “서 대장님, 아무래도 우리 분국에 내통자가 있는 것 같아요.”
서무쌍은 다른 한 손으로 컵을 움켜쥐었다. 아득히 먼 신호 너머 청년의 온도가 여전히 곁에 있는 듯했다. “계속해봐.”
정작 왕대우는 민망해졌다. “그러니까, 먼젓번에 형 대장님과 통화하실 때요. 제가 밖에서, 음, 어쩌다 통화를 들었는데.” 그는 멈칫했다. 서무쌍은 그가 마음을 굳힐 때의 표정까지 상상할 수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은 굳게 다물었을 것이다. “엿듣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어요!”
고비를 넘자 말소리는 훨씬 빨라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 며칠 일부러 그 사람을 살펴봤어요. 최근에 파출소에서 파견 온 사람이라 다들 잘 모르더라고요. 그런데 그 동안 연속해서 몇 번이나, 체포 작전에 나서기 직전마다 몇 분씩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곤 했던 거예요. 저와 형 대장님이 분국 CCTV 영상을 살펴보겠다고 신청해서 확인했더니, 그 사람은 번번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는 말을 멈추었다. 전화기를 움켜쥔 채 숙제를 제출한 어린아이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평가를 기다렸다.
처음으로, 서무쌍은 그의 추리를 무시하지 않았다. 희미한 전류의 소음 너머로 웃음이 들렸다.
“나욱동은 여기서 계속 감시해. 근방 관할 서에 요청해서 협조받도록 할 테니까. 제염은 나와 함께 복귀한다. 돌아가서 마저 이야기하지.”
전화가 끊긴 뒤 왕대우는 넋을 놓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여전히 형국량의 전화기를 든 채였다. 대대장은 제 전화기의 운명이 심히 근심스러웠다.
그는 떠보듯 물어보았다. “뭐래?”
왕대우가 전화기를 든 채 와락 덮쳐드는 바람에 그에게 들이받힌 형 대대장은 비스듬히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형 대장님! 서 대장님이요!”
형국량은 한 손으로 전화기를,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허리뼈를 긴급히 구조했다. “뭐라고 했어?”
청년의 가지런한 이가 햇빛 아래 반짝이며 빛났다. “하하, 서 대장님이랑 저만의 비밀이에요. 안 가르쳐 드려요!” 그는 여전히 형국량의 전화기를 든 채, 또다시 지진을 일으키며 멀리 뛰어갔다.
서무쌍은 고작 반나절 만에 복귀했다. 사무실에 있던 왕대우는 일순 그를 못 알아볼 뻔했다.
“잠은 주무신 거예요? 손은 어쩌다가 다치시고…… 요 며칠 얼마나 추웠는데…….” 그는 구구절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서무쌍은 완전히 목이 쉬어 있었다. 그러나 눈은 어찌나 밝게 빛나는지 속에서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따라와. 형 대장과 회의하러 간다.”
그들은 신속하게 앞으로 조사할 방향을 정했다. 내부자가 얽힌 건이니 모든 일을 지극히 은밀하게 처리해야 했다. 왕대우는 며칠 내내 풀 죽어 있다가 이제 안팎으로 뛰어다니느라 몹시 신이 났다. 부쩍 힘을 내어 땅에서 솟구치는 해바라기 같았다.
형국량은 서무쌍에게 손을 내밀었다. “키.”
“무슨 키?”
“딴청하지 마. 차 키.”
서무쌍은 한숨을 쉬더니 열쇠를 꺼냈다. 형국량은 그것을 왕대우에게 대뜸 던졌다.
“애송아, 차고로 가서 네 사부 차를 끌고 와라. 이러고 차 몰게 두면 마음이 안 놓여. 네가 운전해서 데려다가 얼른 재워.”
왕대우는 두 손으로 차 키를 받들고 한껏 신이 나서 떠났다.
“아깝네.” 복도 너머로 사라진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형국량이 말했다.
“뭐가 아까워?”
“소왕(小王)이 문서 작업을 아주 잘하더라고. 시국 정책연구실의 이 선배가 그리로 데려갈 수 없겠냐고 물어봤다니까. 시국에 일단 가면 그때부터는 루트가 달라지잖아.”
서무쌍은 받은 대로 돌려주었다. “딴청하지 마. 저렇게 될성부른 형사감을, 어디 아까워서 정책연구실로 보낼 맘이 들어?”
형국량이 기다린 것이 바로 그 말이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비장의 일 초를 휘둘렀다. “내가 아까울 게 뭐가 있어? 누가 그랬더라, 소질 같은 건 말할 거리도 못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