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蓝茵님의 드라마 쌍면신탐 팬픽션입니다. 커플은 왕대우X서무쌍. 한국어 번역 게재를 허락받은 글로, 타처 전재는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입원 생활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짧다고 무료함도 덜한 것은 아니었다. 왕대우는 일단 서무쌍의 노트북 컴퓨터를 갖다 놓고 자신이 요즘 한창 빠진 게임을 알려주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 마스터리 서버. 서무쌍은 그에게 폭탄 같은 꿀밤을 먹였다. 십몇 년 전에 내가 이거 할 때 넌 아직 소학교나 다니고 있었을걸.
용감한 멍멍이는 누차 패배를 거듭한 끝에 불쑥 본성을 드러냈다. 다음날 왕대우는 책가방을 지고 오더니 거꾸로 들고 작은 탁상에 내용물을 쏟아냈다.
서무쌍은 책을 집어 들었다. 이놈 봐라. 신조협려 1~4권이었다. 수많은 무협 소설 중에서 하필 이 시리즈를 골라 오다니. 제자의 속뜻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 이게 무슨 뜻이야?”
“아무 뜻도 없는데요.”
사부는 못 믿겠다는 얼굴로 책을 무슨 흉기처럼 손에 쥐었다. “아무 뜻도 없어야 할걸.”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신조협려를 갖다 주면서 내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무 뜻도 없잖아요. 신조협려에 무슨 다른 뜻이 있는지 말씀을 해 주셔야죠.”
“나가!”
책이 문짝으로 날아오기 전 왕대우는 줄행랑을 쳤다.
신조협려를 ‘십육 년 후, 이곳에서 만나자’까지 읽었을 때쯤 서무쌍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했다. 두 주일 만에 돌아와서 사무실 문을 연 그는 펄쩍 뛸 만큼 놀랐다. 온 방이 푸르른 식물투성이였다. 책상부터 창가까지 빽빽하게 놓인 것이 마치 열대 우림을 보는 듯했다.
그는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다 물러나서 문을 닫았다. 돌아서자마자 왕대우의 ‘칭찬해 주세요’ 눈빛과 맞닥뜨렸다. 유리문을 통과해 청년의 낯에까지 녹색이 비쳐 보였다. “어때요? 의사 선생님이 신선한 공기를 많이 호흡하면 좋다고 해서…….”
서무쌍은 손을 들어 그를 때리려다가, 머리에 닿을 때쯤 주먹을 쥐고 콩 두드리는 것으로 그쳤다. “치워.”
“예? 왜요? 마음에 안 드시는 꽃이라도 있어요? 싫으시면 다른 걸로 바꿔 드릴게요…….”
“꽃도 정도껏 놔야지!” 그는 문 너머를 삿대질했다. “사철 푸른 송백이야? 저기다 앉혀 놓으면 그게 산 사람이야, 흑백사진이야?”
방을 가득 채웠던 식물은 여러 동료에게 배급되었다. 형국량이 가장 많이 받았다. 그의 사무실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꼬리도 그렇게 스리슬쩍 사라졌다. 시국에서 일어난 사고, 혹은 사건에 관해 누구도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일이 이만큼 커진 이상 이제는 신안분국 형사대대에서 입을 댈 문제가 아니었다. 서무쌍은 늘 그렇듯 관할 구역에서 끝도 없이 터지는 사건으로 바빴다. 어쩌다 통지가 올 때면 시국에 가서 조사에 협조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이러구러 한 달쯤 되는 시간이 흘렀다. 서무쌍은 시국에 갔다 오후 세 시쯤 돌아왔다. 형사대대 녀석들이 모두 외근하러 간 사무실은 조용했다. 책상 앞에 앉아 오래된 큐브를 만지작거리는데 아래 깔려 있던 뭔가의 붉은 끄트머리가 보였다.
그는 큐브를 치워 보았다. 호신부였다. 빨간 바탕에 출입평안(出入平安, 어디서건 평안하기를) 네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신령의 가호를 구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누가 갖다 두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여섯 시가 넘자 녀석들은 모두 돌아왔다. 식당 저녁 시간이 거의 끝날 때라 다들 가방을 내던지고 밥을 먹으러 달렸다. 왕대우는 한발 늦었다. 서무쌍은 방에서 나와 그의 자리에 세워진 유리 칸막이를 톡톡 두드렸다.
한창 식당 카드를 찾느라 정신없던 제자는 즉각 고개를 들었다. “아, 사부님. 아직 저녁 안 드셨어요?”
서무쌍은 평안부를 들어 보였다. “네가 가져온 거야?”
“네.” 왕대우는 그를 바라보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믿으시건 안 믿으시건, 마음이나마 평안하셨으면 해서.”
하도 간절한 태도라 서무쌍은 화를 내기 멋쩍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콧등을 만지작거렸다. “우리처럼 외근 다니는 직종은 이런 거 갖고 다녀서 좋을 게 없다. 그리고 나도 앞으로는 더 조심할 테니까…….”
왕대우는 그의 손목을 부여잡더니 평안부를 쥔 손을 오므려 주었다. “제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도요. 그래도 안 돼요?”
제자는 상냥하고, 말도 많고, 충분히 과감하지도 못했다. 서무쌍은 슬쩍 보는 것만으로 형사가 되기에 부적절한 그의 결점을 수두룩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한 조각 진심만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호신부를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왕대우는 벌써 화제를 돌렸다. “저녁 먹으러 갈까요?”
결국 서무쌍은 왕대우와 저녁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 그는 왕대우를 기다리지 않고 혼자 차를 몰아 숙소로 돌아왔다. 도시의 수많은 집이 불빛을 밝힐 무렵에는 옥상에서 세 병째 맥주를 따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잔뜩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의사 선생님이 술 드셔도 된댔어요?”
서무쌍은 뒤쪽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너도 한잔해.”
왕대우는 그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닥쳐오더니 긴 다리로 훌쩍 뛰어올라 옆자리에 앉았다. 우유 캔이 즉각 맥주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여전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마셔도 괜찮은지 제가 찾아볼 거예요. 먼젓번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씀도 다 메모장에 적어 놨으니까…….”
서무쌍이 물었다. “평안부는 어디서 구해 왔어?”
왕대우는 멈칫하더니 폰을 내려놓았다. “북쪽 그 부두 옆의 절에서요.”
서무쌍은 웃었다. “그럴 것 같더라니. 전에는 여기 그런 부두가 있는지도 몰랐으면서, 이제는 그 옆에 절이 있는 것도 알아?”
폐쇄되기 전 한때는 북쪽 부두도 번화한 항구였고 근처에 상업 시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모두 진해 사람 왕대우가 수성에 오기 전의 일이다. 그는 절이나 사당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저 웹에서 검색해 보니 오래된 절이라 평안부도 영험하다고 해서, 기억을 따라 되짚어 가본 것이었다.
서무쌍은 왕대우보다 십일 년을 더 살았고, 왕대우보다 십일 년 먼저 수성에 왔다. 그 무렵 북쪽 부두에는 아직 옛 영광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옛날에는 젊은이들이 그 근처로 곧잘 놀러 가곤 했지.” 서무쌍이 말했다. “밥도 먹고, 구경도 다니고, 거기에는 뭐든 있었으니까. 시간이 참 빨라. 네가 새로 나온 와우라는 게임 참 재밌다고 하던 것처럼.”
“서 대장님도 자주 가셨었어요?” 왕대우가 물었다.
“나? 나는 별로. 수성으로 같이 온 학교 동기가 있었는데 그 동기가 퍽 자주 갔지.”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나한테도 노상 같이 가자고 불렀지만 난 가지 않았어. 그러다 몇 년이 지나고 그 동기가 제자를 들였는데, 아주 말 잘 듣고 얌전한 제자라 늘 함께 가주더군.”
왕대우는 입을 열었지만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불빛은 화려하게 어른거리고, 서무쌍의 얼굴에는 명암이 교차하는 그림자가 넘실댔다. 종잡을 수 없는 색채로 빛나다가도 다음 찰나 무거운 옛일의 안개 같은 그림자로 빠져들었다.
“몇 년 안 가서 그 제자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왔어. 승진해서 진해로 가게 된 거야. 사무실에서 문서 작업하는 내근직인데, 퍽 한가하다나. 그 제자는 떠날 때도 깍듯하더군. 우리 팀 모두를 북쪽 부두로 초대해서 밥을 샀거든. 그 뒤로는 다시 간 적이 없어.”
“내 책상에 바다 사진이 한 장 있지. 그게 그때 찍었던 거야.”
왕대우는 끄덕였다. 그 사진을 본 기억이 있었다. 드넓은 해수면 위로 석양이 드리워 물결 속에 일렁이며 빛났다.
“그 제자도 신이다 부처다 하는 걸 참 좋아했거든. 떠나게 되니까 제 사부더러 함께 절에 가서 앞길이 어찌 될지 제비를 뽑아 보자고 했어. 그래서 나도 거기 절이 있다는 걸 알았지. 그날 뽑은 점괘가 그렇게 좋았다던가. 대길(大吉)이었다고.”
“나 같은 사람을 사부로 모셨으니 너도 이런 건 인제 그만둬라. 운명은 자기 손에 달린 거야. 그만 내려가. 갈 때 빈 캔 가져가고.”
왕대우는 문득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청년의 낮은 목소리에 흐릿한 술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는 코를 부벼왔다. “취했나 봐요. 못 걷겠어요.”
서무쌍은 몸을 빼려 했지만 그가 굴러떨어질까 봐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다. 왕대우가 그를 더 꼭 당겨 안았다.
“너 맞고 싶어?”
“깜박했는데, 신조협려는 다 읽으셨어요?” 왕대우는 그의 겨드랑이 아래 엎어진 채 느닷없이 물었다.
“잘도 그 얘기를 꺼내는 걸 보니 정말 맞고 싶은가 본데.”
“다른 책을 새로 드릴게요.”
결국 마지막에 취한 쪽은 서무쌍이었다. 왕대우가 그를 업은 채 한 발짝씩 옥상에서 걸어 내려왔던 것 같았다.
왕대우는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무쌍의 침대맡에 새 책이 나타났다.
그 책을 발견한 것은 어느 날 퇴근 후였다. 책을 준 사람은 방에 없었다. 서무쌍은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을 집어 들었다. 연회색 표지에 작은 글씨가 인쇄되어 있었다. 『창백한 언덕 풍경』.
저녁에 왕대우가 돌아왔을 때, 서무쌍은 침대에 앉아 그 책을 읽고 있었다.
“재미있어요?” 그는 물었다.
서무쌍은 책에서 눈을 떼더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몹시도 감정이 풍부했다. 서무쌍이 그렇게 누군가를 쳐다볼 때면 왕대우는 빛이 고요히 일렁이던 사진 속 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너한테도 책 한 권 줄까?”
“하하, 아니에요. 전 FBI나 볼래요.”
십일 년. 두 사람 사이에 자리한 시간이다. 하루하루의 이야기를 한 줄의 문장으로 압축해 그 문장 하나하나를 엮어 책으로 만든다고 한들, 왕대우가 그 책을 다 읽으려면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창백한 언덕 풍경』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서무쌍은 얼마 되지 않아 책을 다 읽었다. 그들은 일 때문에 몇 번이나 북쪽 부두를 스쳐 지났다. 하지만 그 절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다. 서무쌍은 정말 그런 것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오후, 둘은 차를 타고 순환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 해가 서녘으로 저물고 멀리 백로가 연한 금빛 하늘가에 그림자를 남겼다. 왕대우는 조수석에 앉아 해수면을 바라보다 문득 말했다. “사부님, 그 사진 같은 풍경이네요.”
서무쌍은 고개를 기울여 슬쩍 그를 보더니 말했다. “맞아. 그 사진을 찍을 때도 오늘처럼 날씨가 좋았거든.”
왕대우는 코끝을 유리창에 갖다 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차에는 에어컨 소리만 울렸다.
등 뒤에서 서무쌍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치가 정말로 아름다워서, 참 보기 드문 날씨구나 싶었지. 그래서 제비를 뽑으러 갔던 거야.”
저자 후기 :
『창백한 언덕 풍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로,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한 그 친구는 사실 나야.’ 왕대우가 『신조협려』를 줬을 때는 다른 뜻이 담겨 있었고, 그러니 두 번째로 『창백한 언덕 풍경』을 준 데에도 속뜻이 있어요. 당신이 말한 친구 이야기가 사실은 당신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당신이 진실을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 거예요. 마지막에 서무쌍은 그날 결국은 제비를 뽑으러 갔다고 말하면서, 역시 『창백한 언덕 풍경』의 한 대목을 빌려 이야기 속 친구가 자신임을 시인합니다. 그는 책을 읽고 드디어 왕대우 앞에서 자신의 옛 상처를 인정하기로 마음먹었고, 서로에게 솔직해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되겠죠. 이것으로 완결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