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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귀래(5일의 마중)》 진도명 인터뷰

 

 

南方周末对话陈道明 愈合历史给我们留下的斑斑伤痕 - 在线观看 - 电影 - 乐视视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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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이 누굽니까?
원뢰 씨군요.


ㅡ원뢰 : 『남방주말』 문화부장


그런 건 정말 없어요.
그런데도 굳이 나한테 말을 이렇게 많이 시키고......


장예모 감독에 대한 비판부터 할까 하는데요.


네, 말씀해 보세요.




ㅡ파괴가 아닌 관용이 필요하다


장예모의 영화 중 어떤 것들이 괜찮은 영화라고 보십니까? 예전 장예모의 영화들, 혹은 외국에서 상을 탔던 우리 중국의 많은 영화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낡아빠진 부분을 조롱하는 것들이었죠. 집 안에 꽁꽁 싸매 뒀던 전족한 발을 내보여서 외국 관객을 얻었던 겁니다.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 관용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감시 초소 위에 서서 온 세상에 손가락질을 하고 있어요. 그런 자세는 업계와 업계 사이, 그리고 업계 내부를 모두 파괴해 버립니다. 비평은 상관없습니다. 그 붓끝의 신랄함과 온도를 체감할 수 있으니까요. 인터넷에서 기사 끝부분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무슨 부모를 죽인 원수 보듯 해요. 그런 괴팍함, 평범한 사람들의 괴팍한 포악성이 어디서 왔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마치 그 사람들 돈을 써서 영화를 엉망으로 찍어 놓기라도 한 것 같아요.




ㅡ육언식과 아버지


《귀래》의 어떤 부분이 마음을 움직였나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영화가 우리 신 중국(49년 인민정부 수립 이후의 현 중국을 말함) 지식분자들이 성장해 나가던 와중의, 비교적 전형적인...... 하나의 삶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런 부분이 나 자신이 겪은 삶과도, 내 아버지와도 상당히 부합된다는 것이었죠. 제가 육언식을 봤을 때, 육언식으로 처음 그렸던 그림이ㅡ


뒷모습 말씀이신가요?


아니, 그 뒷모습 그림은 다른 겁니다. 처음 그린 그림은 그의 얼굴이었습니다. 거의 내 아버지와 비슷한 얼굴이었죠. 분장을 할 때 예를 들면 안경 같은 것도, 아버지와 가장 비슷한 걸 골랐습니다. 아버지가 쓰시던 것과 비슷한 안경으로요.
그래서 이 인물을 만들 때는 마음 속에 어떤 견실한 것, 아주 튼튼한 것이 있었어요. 문혁 도중이나, 기억이 있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운동'이 벌어질 때마다 보아 왔으니까. 아버지의 어떤 탄식, 넋 나간 듯한 모습, 반복되는 긴장, 사람을 대할 때의 불안감...... 어려서부터 줄곧 영향을 받았던 것들입니다. 아무도 나 대신 느낄 수 없는 것이죠.


그런 어떤, 문을 두드릴 때의 긴장감 말인데요. 《귀래》의 오프닝을 보면 굴뚝에서부터, 비 오는 날인데, 들어가서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있었죠. 그를 배신하려고 준비 중인, 그를 버린 아이가 아래서 기다리고 있고요.


내일이라도 어떤 사람이 올지 모르는 겁니다. 초조하지 않겠어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딱, 아이쿠, 가산몰수를 하러 온 거 아닌가. 두렵지 않겠습니까?
(가산몰수 : 문화대혁명 당시 '반동분자'의 집에 들이닥쳐 살림살이를 뒤집어 엎고 빼앗거나 내다 버리던 일들을 말함)
굉장히 인상 깊게 남은 한 마디가 있습니다. 문혁 시절인데, 밤 열 시였어요. 그 때는 다들 일찍 잠들던 때죠. 쾅쾅쾅 하고 누가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머니가 딱 한 마디를 하셨죠. 왔구나. '왔구나', 생각해 보세요. 딱 가산몰수가 시작되는 그 순간에, '왔구나' 한 마디만 하신 겁니다. 그 분들이 하루하루 기다려 오던 게 어떤 건지 아시겠습니까? 언제 어느 때에 음양두로 머리를 깎이게 될지 모르는 겁니다. 집안의 모든 물건이 창문 밖으로, 길바닥으로 내던져지고요. 그래서...... 
(음양두 :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지식분자나 자산가 등 불순분자로 몰린 사람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머리카락을 반만 깎았던 것. 보통 왼쪽은 밀어 버리고 오른쪽 머리카락을 남겼으며 심하면 눈썹까지 미는 경우도 있었다. 본래 고대에는 창녀나 도둑 등에게 마을 차원에서 행하는 일종의 사형私刑이었다고 함)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어쨌거나 나는, 고난과 경험들, 경험들을 자원으로 생각합니다. 육언식과 나는 아주 가깝다고만 말해두겠습니다. 내가 연기해 온 어느 인물보다도 가깝습니다. 삶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위성圍城》이나 《마지막 황제》, 《강희》, 《동지》라든가......
(《위성(1980)》 : 저명 문학가 전종서錢鍾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10부작 드라마. 1937년을 배경으로 유럽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지식인 방홍점(진도명 분)의 사랑과 일 이야기를 다룸)
(《마지막 황제(1988)》 : 청의 마지막 황제 부의를 소재로 한 28부작 드라마. 진도명은 청년 부의 역을 맡았음)
(《강희왕조(2001)》 : 청 강희제의 일대기를 다룬 46부작 드라마. 진도명 주연)
(《동지(2003)》 : 두 남자의 싸움을 그린 36부작 현대극. 평범한 은행원 진일평(진도명 분)이 금고 도난 사건에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고유균(영화 《나의 1919》)도 있고요.


사실 모두 제 삶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죠. 고양이 보고 호랑이를 그리듯 흉내를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로지 이 인물만은 제 체험에서 우러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부분 하나 빠짐없이 다 그래요. 육언식은.


사실 저희가 아버님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었는데, 사진을 찾지 못했어요.


너도나도 사진 찍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죠.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크게 보면 지식인들에게 올리는 위령제, 중국의 진정한 지식인들을 위한 추도라고 할 수 있겠군요. 개인적인 의미로는, 그냥...... 제 아버지에게 올리는 제사죠.




ㅡ문혁의 기억은 치유되어야 한다


영화에서 두 가지 층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죠. 배반과 배신에 대해서.


감독과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그, 눈물이라는 건 세 가지가 있어요. 첫번째는 너무 기뻐서 우는 거고, 두 번째는 슬퍼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마지막은, 치유의, 감동의 눈물이죠. 이런 겁니다. 분명히 이게 깨졌다는 걸 아는데, 그걸 하나 하나 다시 붙여 맞추는 겁니다. 아무는 거죠. 그럴 때 생겨나는 감동, 그것도 눈물입니다. 저는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육언식과 풍완유는, 줄곧 아물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역사에 점점이 얼룩진 상처를 치유하는 겁니다. 그게 육언식이 끝까지 고수하는 부분인데, 우리 영화에는 원망이 없습니다. 추억도, 규탄도 없어요.


맞아요. 전혀 없었죠.


성토하는 영화가 전혀 아니에요, 전혀. 원망 한 마디 없습니다. 육언식이 편지 읽는 장면을 보세요. 내가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편지를 읽는 장면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나는 그의 괴로움이라든지 내가 여기서 어쩌고 있다 뭐 이런 건 하나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평온하고 담담하죠. 나는 그 장면을 거의 뉴스 원고 읽는 속도로 연기했어요. 뉴스 속도라는 건 이성적인 속도죠.


영화 속에서처럼 뭔가 고수하고, 지키려 하는 기억들이 실제 문혁 중에도 있었을까요?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수가 적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 시절 사람들은 지금에 비해 꼬장꼬장한 기개가 있었지요. 문혁 시절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겠습니까. 자살했다는 것은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거든요.


굽히지 않은 걸까요, 아니면 버티지 못한 걸까요.


버티지 못하겠다면 타협을 하면 됩니다. 투항을 하고, 남을 팔아넘기고, 배반을 하면 되죠. 왜 굳이 자살을 선택했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용기 있는 것은 아니죠. 제 아버지는, 성실한 편이었습니다. 그나마 아버지의 인생 기복은 구릉 정도였죠. 육언식처럼 절벽에서 떨어지는 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그 분의 초조함과 공황은 아마도 고난보다 컸을 겁니다. 구체성이 없는, 거대한 고난의 여정이었죠. 5.7 간부학교네, 외양간이네 하는 것들이 모두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5.7 간부학교 : 모택동의 5.7 지시에 의거해 세워졌던 수용시설. 5.7 지시란 모택동이 문화대혁명 시작 전날 임표에게 보냈던 편지의 약칭으로 문화대혁명의 기본 사상을 담고 있다. 5.7 간부학교에서는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당과 정치기관의 간부 및 각 분야의 지식인들을 수용하여 노동을 통한 사상교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연령 및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 군대 식으로 편제되어 아침저녁으로 구호를 외치며 농사나 돼지치기 등의 육체노동에 투입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5.7 간부학교에 수용되었던 사람은 십만 명에 달한다)
(외양간 :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우귀사신'으로 판별된 사람을 수용하던 시설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 외양간은 민간 용어로, 정식 명칭은 '집중훈련대' 내지 '노동개조대' 등 지역마다 다르다. 사법기관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므로 합법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매우 공적인 시설이었고 지방 유지나 자본가, '반동적' 지식인 등이 주 피해자였다. 5.7 간부학교 같은 시설 역시 넓은 의미로는 외양간에 포함된다)


다 표준적인 프로그램이었죠.


네, 그렇죠.




ㅡ문화 앞에서는 다 아무것도 아니다


《공자》와 《야연》, 《매란방》을 거절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러지 맙시다. 남에게 상처를, 상처 주지 마세요. 거절한 게 아닙니다. 내가 안 어울렸을 뿐이에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작업은 사실 굉장히 여유가 없습니다. 아주 헐레벌떡 해야 하죠.


그런 다급함은 시장 여건 때문인가요?


돈 때문이죠. 돈 때문 아니겠습니까. 창작이란 원래 피곤한 일이고, 흥분은...... 즐거움보다 드물지요. 저는 확실히 좀 경솔한 데가 있었어요.
전종서 노선생님과 세 번쯤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어느 날 깨달았는데, 우리가 굉장히 초라한 겁니다. 학문이라는 것 앞에서 우리는 굉장히 초라해집니다. 전 선생님의 그런 삶 앞에서...... 그 분 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있는데, 소리를 내는 것이 하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뭔지 짐작이 가십니까? 그 댁에는 비디오도, 텔레비전도, 전화도 없습니다. 소리를 내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약탕기예요. 시간이 되면 약탕기가 부우우 우는 겁니다. 한약에 쓰는, 약 달이는 그 약탕기 말입니다. 그 댁에서 제일 시끄러운 게 그거였어요. 그 댁에 가면 책 향기가 맡아지고, 고요가 들립니다. 여유라는 것이 보이는 거지요. 그리고 문득 느끼는 겁니다. 문화 앞에서는, 다 아무것도 아니구나.


ㅡ이 유리는 이렇게 깨지는 거야.


ㅡ반드시 세월의 흔적이 있어야 돼.


ㅡ구식으로. 하하.


ㅡ나는 좋은 배우가 아니야.


배우 일을 하시면서, 모두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연기자로 자리매김하셨는데요. 그리고 그 존경이 지나치게......


어떤 이미지가 있어요.


지나치게 사랑을......


아니, 아닙니다. 존경과 사랑도 있고, 아주 많은 이미지들이 있는 거죠. 나 대신 완벽한 이미지들.
나는 그렇게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요. 나도 그냥 보통 사람이고, 내 감정이 있고,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그냥, 굉장히...... 일반적인 셈이죠. 나를 너무 좋게, 혹은 너무 나쁘게 보지만 않으면 됩니다. 나를 굳이 좋게 말하려면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나는 다른 사람을 위협하지 않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항상 온 힘을 다 합니다. 사람들에게, 가족에게, 사회에 대해서 전부 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