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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삼국

《화봉요원》 [팬픽션] 물고기


优秀员工米诺斯님의 화봉요원 팬픽션입니다. 가후, 곽가, 순욱이 나옵니다(조조도 약간).
원 저자분께 번역 게재를 허락받고 올리는 것이므로, 타처 전재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가목賈穆이 아버지 가후로부터 받은 곽가의 첫인상은 한밤중에 울리는 공후箜篌 소리였다.
 끊어졌다 또 이어지고 이어지다 또 끊어지는 소리가 빈 산에 옥같은 이슬 내려 봉황이 우는 양, 바짝바짝 조여들며 가목의 뇌신경을 헤집어 놓았다. "귀신 우는 소리도 이것보단 낫겠다."
 누가 톱을 들어 가목의 뇌신경을 쓸고 있는 듯했다. 신경이 톱에 쓸려 반 넘어 끊어진 가목은 뛰쳐나가 가후의 방문을 두드렸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눈이 붉어진 가후가 문가에 와 섰다. 입에는 가느다란 단향목檀香木 비녀를 하나 물었는데 꼭 어린아이가 젓가락을 물고 있는 것 같았다.
 "홍소." 비녀를 물고 있던 까닭에 가후의 말소리는 다소 새어나갔다. 가목이 알아 듣기도 전에 그는 휘청거리는 손으로 문을 닫아 버렸다.
 몇 번인가 실험을 반복해 본 후에야 가목은 그 날 가후가 말하려 했던 것이 봉효奉孝임을 알았다. 바로 곽가였다.



 "통발에 고기 걸렸네, 자가사리에 모래무질세.
 군자에겐 술 있으니, 맛나고도 많다네.
 통발에 고기 걸렸네, 방어에 가물치로세.
 군자에겐 술 있으니, 맛나고도 많다네.
 통발에 고기 걸렸네, 메기에 잉어라네.
 군자에겐 술 있으니, 맛나고도 많다네.
 잡은 것 많으니 그를 기뻐하세나!
 잡은 것 맛나니 그를 함께하세나!
 잡은 것 있으니 그 때 맞춰 먹세나!"

 강릉江陵에서 출발하여 장강의 흐름을 타고 내려가면 손가가 다스리는 동오에 닿는다. 풍요로와 쌀과 고기가 많이 나는 땅이었다. 해마다 풍년이 드니 거두는 쌀이 많아 평생토록 먹어도 남아 돈다 했다. 양주揚州의 백성들은 남아 도는 쌀과 비단을 내다 북쪽 추운 유주幽州 땅에서 십 년 동안 한 아름이 되도록 자란 건실한 목재와 바꾸어 물 위를 달릴 배의 돛대를 만들었으며, 교주交州의 살 오른 바닷고기와 바꾸어 명랑한 눈매에 까마귀 같은 머리와 눈 같은 피부를 지닌 아들딸들을 먹여 키웠고, 서역에서 전해 온 비파며 피리로 노래하는 량주凉州의 가희歌姬들과 바꾸었다. 그러고도 남는 쌀로는 술을 빚었다.
 원가와 조가의 전쟁으로 강북은 열 중 아홉 성이 빈 마당에, 천험의 방벽 장강이 있는 까닭으로 양주에서는 해질녘이면 은은한 술 향기와 밥 짓고 채소 볶는 향이 골목을 메웠다.
 "남방에는 역질이 도니 내가 남으로 간다면 살아 오지 못하리라." 몸이 약해 병이 많은 곽가는 장강 북안에 붙잡혔다. 용솟음치는 강물이 술과 고기를 따라 활개치는 역병을 막았으며, 향긋한 탁주에 과실주며 감칠맛 도는 바닷고기 역시 막았다. 그리하여 곽가의 강남을 향한 그리움은 <물고기魚麗>라는 노래 한 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예주豫州에는 그 노래를 어찌 부르는지 아는 자가 없었다. 그들이 그 오묘한 물고기 이름들을 하나도 알지 못했듯이.
 곽가는 사마휘가 오래도록 버려 두었던 서책 상자 속, 남방에 유람 갔다 돌아온 떠돌이의 수기에서 그 노래를 발견했는데 한 번 읽은 후로 연연하여 잊지 못하고 있었다.
 <물고기>는 <소아小雅>에 실린 동명의 노래와 마디 쓰는 법이 같았으나, 처음 세 마디 뒤로 물자의 풍요로움을 찬탄하며 마무리짓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물고기 이름을 죽 나열하는 것이었다. 마치 일월성신이며 온갖 초목과 금수, 벌레와 뱀까지 모든 것이 고기가 물을 떠나 변한 것인 양. 그리고 종장에서는 천둥과 함께 그들 모두가 고기로 돌아가 바닷속을 노닐었다.
 "별이 북두를 지나는 건 흉조도 아니고 길조도 아니야." 홀린 듯한 곽가가 가후에게 말했다. "그저 물고기 한 마리가 지루하게 꼼짝 않고 있다 눈을 깜박인 것뿐. 그래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남해의 벗들을 찾으러 간 거지."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노래 다시 한 번 불러 봐."
 단향목 비녀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다, 곽가의 기려綺麗한 노랫소리에 가후 역시 홀리고 말았다.
 가후는 생각했다. 달이 몸을 바꾼 가오리라면 혹시 그와 곽가도 두 마리 고기일지 모른다. 고기로 돌아가는 방법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바다를 따라 교주보다 더 남쪽까지 내려가는 거다. 고래며 상어, 그 밖에 노랫말 속 모든 고기와 얼굴을 트고 지내는 거다.
 다 좋은데 모자란 것은 곽가도 <물고기>를 여섯 마디밖에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동명의 노래는 여섯 마디밖에 없었으니, 시경을 기록한 자는 생소한 글귀들이 언짢아 가사를 반 넘게 지우고는 여섯 마디 곡조에 맞추어 총총히 끝을 내 버린 것이다.
 곽가는 패풍邶風에서 상송商頌에 이르기까지 한 수 한 수 <물고기>와 맞춰 보았으나 결국 마음에 차는 곡조를 찾지 못하였다. 순욱이 그와 더불어 회수淮水에 배를 띄우기까지 그러했다.
 "문약이 신을 벗고 뱃전에 앉아, 들어 본 일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어. 발끝이 가볍게 물풀을 차는데 다리 위에 커다랗고 밝은 반딧불이 한 마리 와서 앉더군. 노래하는 문약의 목소리가 물결처럼 부드러워서, 그게 내가 찾던 곡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순욱이 내는 노랫말 하나 하나가 물결처럼 부드러운 노랫소리에 실려, 고기마냥 머리꼬리 흔들대며 밤하늘을 노닐다, 심해처럼 새카만 밤빛 속에 잠겨, 사라졌어.
 순유는 순욱이 그 때 부른 노래가 그저 <샘물泉水>이라 했다.
 흐르는 저 샘물도 또한 기수淇水로 흘러가네.
 가후는 몹시 미심쩍었다. 주루에 가서 기녀 열 명을 시켜 각자 <샘물>을 불러 보라 했다. 집에 돌아오니 잠이 오지 않아, 한밤중에 일어나 침대맡의 공후를 가져다 기억에 의지해 퉁겨 보았다. 놀란 개가 문득 짖었다.
 다음날 가후는 순욱이 부르는 <샘물>을 들었으나, 물결 같은 노랫소리에 고기 같은 노랫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녀석, 설마 연애하는 건 아니겠지." 결국 가후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샘물>은 순욱과 곽가 사이의 비밀이었으니, 가후는 들어갈 수 없는 문이었다.
 암흑병법은 가후와 곽가 사이의 비밀이었으니, 순욱은 들어갈 수 없는 문이었다.



 가후와 곽가는 피차 뿌리 끝까지 속속들이 아는 사이라 마치 한 가지에서 자란 두 개 오얏과도 같았다.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려면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가 있는지 더듬어 보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므로 가후는 곽가의 머리에서 단향목 비녀를 뽑아 그가 순욱에게 들러 붙도록 놓아 두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는 곽가의 근본을 틀어 쥐고 있을 것이었다.
 조조는 그 나무 비녀를 부서진 한 자락 연정으로 여기고 좋은 마음으로 가후를 불러다 함께 술을 마셔 주었다. 술에 취한 조조는 중얼중얼 말이 많아져 한 마디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말을 이었다. 실연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곽가는 달마다 한 번은 그를 실연시키는 것을.
 가후는 눈썹을 찡그린 채 조금씩 술을 들이키며 얌전하게 조조가 가련히 여길 만한 무리인 척 굴었다. 이 나무 비녀는 빌린 것이고 빚진 것이며 늦든 이르든 제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더군다나 그들처럼 서로 속속들이 아는 관계일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음을 곽가 역시 알고 있으리라고 그는 믿었다.
 가후는 생각했다. 조조는 천군만마를 일으켜 그와 곽가를 함께 남해로 데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여우가죽 모자를 쓴 유주의 장군이며 머리를 땋아 내린 량주의 우악스런 사내를 위해, 이교二喬를 데려다 능라綾羅 윤건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그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색으로 빛나는 비단잉어가 되는 것이다. 그 입 속에 고래며 상어도 족히 찢어발길 날카로운 이를 숨긴 채.
 허나 사람의 헤아림은 하늘만 못한 법이다. 그 바람과 파도를 모두 이겨낸 곽가가 물 설고 땅 설다 하여 지고 말 줄은.
 죽음은 찬란했다.
 곽가의 손은 가후의 손 안에서 천천히 차가워졌다. 가후는 제 마음이 깊은 물에 빠진 고기 같다고 느꼈다. 차고도 미끄러웠다. 저 스스로도 뚫어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가후는 저 자신을 다시 찾을 마음을 먹었다. 곽가를 사랑하기 전의 저 자신을.
 가후는 조조에게 사직을 고하고자 했다. 소매 좁은 가죽 장포를 두르고, 허리에는 둥글게 휜 보도를 차고, 등에는 비파를 메고, 량주로 말을 달려 어린 시절 꿈꾸던 서역으로 가서 아리따운 여자를 끼고 종과 북을 치며 춤을 추는 것이다. 여섯 마디짜리 <물고기>를 갖고 가서 길을 따라 가며 그 곳의 사랑 노래들과 바꿀 수도 있었다. 사마휘가 전수해 준 병법과 칠성등으로 목숨 잇는 법을 갖고 가서 포도넝쿨 아래의 전설과 바꿀 수도 있었다. 푸른 눈의 아름다운 아내와 베개를 베고 곽가의 마른 팔이며 앙상한 몸을 떠올릴 수도 있었다. 곽가가 꿈에서 보았다던 원숭이 잡아 먹는 괴물 곰을 보기 위해 시커먼 삼림 속에서 석 달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는 거의 그렇게 할 뻔했다. 당시 조조는 남하할 전선戰船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대장군 손책의 아름답기로 이름 높은 과부를 빼앗고자 함이었다. 가후는 날카로운 칼마냥 길쭉하니 잘 빠진 전선 위에서 시찰 중이던 조조를 찾아냈다. 조조의 소매에는 검은 천이 엮여 있었다. 그는 잠시 정신을 놓고 있다가, 얼마 전 죽어 묻은 조충曹沖을 떠올렸다. 동병상련의 착각이 생겨났다. 병이라 고하고 고향에 돌아가려 기껏 생각해 온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그리하여 가후는 시험 삼아 조조에게 출병을 포기하라 권해 보았다.
 조조는 가후더러 장안에서 첩보를 기다리고 있으라 했다.
 다음날 아침, 가후는 깨질 듯한 머리로 잠에서 깼다. 꿈에서 곽가를 본 것이다. 둘은 밤새도록 동오와 어찌 싸울 것인지를 논하고 있었다. 가후는 머리의 단향목 비녀를 뽑아 거칠게 베개에 내리꽂았다. "넌 죽었잖아! 죽었으면 가만히 좀 있어!"
 가후는 생각했다. 곽가는 필경 조조의 꿈에 자주 나타났을 것이다. 조조가 남하한다면 길을 따라 본 미경美景과 미주와 미인을 엮어다 시가를 지어 곽가에게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양주를 관통하여 남해에 이르면 전설 속의 고기들도 직접 볼 수 있겠지. 조조가 꿈 속에서 <남쪽의 좋은 고기南有嘉魚> 하는 노래를 부르면 곽가는 웃으리라. 그는 본래부터 한 마리 물고기였으니.



 패해 돌아온 군대는 고기 뱃속에 장사 지낸 동포들의 시체를 갖고 올 수가 없어, 죽은 이의 의복 일습만을 과부와 고아들에게 전해 주어 의관총을 만들게 했다.
 가후는 출정을 반대했던 모사로 장수들의 예우를 받았다. 그러하니 그가 강동의 포로 하나를 사려는 것을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 포로는 고작 고기잡이 아이였으므로, 아무도 그에게서 쓸 만한 정보를 캐려 들지 않았으며 그에게 패전의 분노를 풀려 하지도 않았다.
 가후는 그 아이의 거친 손가락을 쥐고, 볏짚 빛깔 도는 머리칼을 뽑아 보고, 붉은 피부 위에 새겨진 백 마리 물고기들을 차근차근 살펴 보았다.
 위병이 말하기를, 그 아이는 차가운 물에 들어갔다 하면 붉은 피부가 호수처럼 푸르고 희게 얼며 몸에 새긴 백 마리 물고기가 살아나 유연하고 휘황하게 빛나는 오색 빛깔 비늘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머릿속에 먹을 생각만 가득한 어리석은 물고기들이 꼬여 몰려와서 아이 주변을 맴돌며 살아 있는 문신을 질투하여 삼키고자 한다. 그렇게 하여 아이는 매일 만선을 거두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가후는 그 아이에게 <물고기>를 노래하게 시켜 보았다. 아이는 노래했으나 가후가 상상하던 곡조와는 무척 다른 것이었다.
 그리하여 가후는 그 아이에게 <남쪽의 좋은 고기>를 가르쳤다.
 아이의 목에 울대가 나와 어린아이 특유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자 가후는 다른 포로를 하나 샀다. 손가락이 길고 가는 것이 곽가와 같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곽가처럼 까마귀 빛깔 검은 머리를 한 포로를 하나 또 샀다. 그리하여 가부賈府에서는 잇달아 곽가의 그림자 무리를 기르게 되었다. 곽가가 <샘물> 가락의 <물고기>밖에 들을 수 없었듯 모두가 얻을 수 없는 무언가에 기대고자 하는 근심이었다.
 훗날 가후는 그 그림자 무리를 풀어 주어 가부를 떠나도록 하고 홀로 지냈다.
 그리고 장안 거리를 뛰노는 아이들 사이에 한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남쪽에 좋은 고기 있어 가리질하니 많고 많네
 군자에겐 술 있으니 아름다운 손과 잔치를 즐기네
 남쪽에 좋은 고기 있어 헤엄치는 모양 많고 많네
 군자에겐 술 있으니 아름다운 손과 잔치를 기뻐하네
 남쪽에 가지 휜 나무 있어 호박 넝쿨 엉기었네
 군자에겐 술 있으니 아름다운 손과 잔치를 편히 하네
 훨훨 나는 비둘기 님 그리듯 많고 많네
 군자에겐 술 있으니 아름다운 손과의 잔치를 그리고 또 그리네


 





본래 시경의 시들은 노래로 불렸던 것들이라 각자 제 곡조가 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알 길이 없지요. 후한 말까지는 곡조가 아직 전해지고 있었을 것으로 가정하고 쓰인 글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뒤가 잘리지 않은 <물고기>'는 물론 가상의 노래입니다만...... 시경의 <물고기>와 <남쪽의 좋은 고기>는 소아 편에, <샘물>은 패풍 편에 실려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샘물>은 시집간 여자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첫머리 즈음에 나오는 '빈 산에 옥같은 이슬 내려 봉황이 우는 양' 운운하는 부분은 당唐대 시인 이하李賀의 이빙공후인李憑箜篌引에서 따와 글자를 두엇 바꾼 표현입니다. 공후란 옛 현악기의 일종으로, 이십삼현을 썼다고 하네요.

시경 번역 때문에 엄청 고생했는데 잘 됐는지는...... 특히 마지막 <남쪽의 좋은 고기>에서 '좋은 고기'는 한자로 嘉魚, 곽가의 嘉와 같습니다. 한문에서만 가능한 이런 류의 말장난은 참 매력적인데 옮기기는 쉽지가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