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御风少年张二狗님의 의천도룡기 2019 팬픽션입니다. 현대 배경 AU에 장무기x양소, 대형견처럼 귀여운 청년 장무기와 까탈스럽고 성격 더러운 중년 양소 조합으로 수위는 15금 정도. 쓰신 분께 한국어 번역 게재를 허락받은 글로, 타처 전재는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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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교 컬처 미디어 LLC의 양소는 어떤 사람인가?
“양 수석보좌관님은 유능하고, 깨끗하고, 저속한 취미라곤 없는 좋은 사람이죠. 적을 대할 때는 가을 바람이 낙엽을 쓸어 날리듯 냉혹무정하고, 동료를 대할 때는 가을 바람이 낙엽을 쓸어 날리듯 냉혹무정하고.”
젊을 적 성격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양소는 희노애락을 잘 내보이지 않는 진중한 남자였다. 그를 가까이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어가는 양 회장 같은 이를 제외하면, 그의 평온하고 예쁘장한 낯 아래 출렁이고 물결치는 마음을 뚫어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 그의 맞은편에 앉은 은천정 이사만 해도, 스스로가 나이 많고 경력 긴 것만 알지 나머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열정적으로 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쪽은 우리 귀여운 외손주 장무기다. 불회야, 젊은이들끼리 인사하려무나.”
양소의 인생에서 평생 가장 어색한 경험을 고르라면 지금 이 순간은 반드시 깊고 굵은 획을 남길 것이다. 지금 그는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새로 딸의 곁에 앉아, 은천정이 데리고 나온 그의 손주를 상대로 맞선이라는 인간의 사교 행위를 진행 중이었다. 물론 밖에서 보기에는 화기애애한 조손 삼대의 식사 자리 같기는 했지만, 청년 남녀에게 상호 호감을 심어 주려는 목적의 맞선이 맞았다. 그러나 양소는 이 자리에 여성 윗어른이 없어서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놀람 반 기쁨 반의 얼굴을 하고 맞은편에 앉은 잘생긴 청년이야말로 양소를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편안히 앉아 있기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천직이라도 찾은 듯한 은천정이 맞선 과정을 전부 진행했으므로 양소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그는 표정의 변화 없이 맞은편 청년을 관찰하는 데에 좀 더 신경을 기울일 수 있었다. 한 번씩 눈길을 줄 때마다 속으로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다. 다 인연이 있어서 만나게 되는 법이다” 따위 문장을 외워 가면서.
어젯밤의 네온사인은 지나치게 밝고 지나치게 황홀해서, 앳된 티가 나는 젊은이의 얼굴은 온통 얼룩덜룩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또렷하게 보이던 것도 있었다. 양소는 상대의 눈이 별보다도 반짝이며 빛났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지금 그 눈빛이 젊은이의 애타는 마음을 가득 담은 채 그에게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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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 자네는 무기에게 궁금한 것 없나?” 은천정이 갑자기 질문을 던지며 은근하게 양소를 향해 눈짓을 보내 왔다.
양소는 은천정의 퇴장 신호를 무시하며 냉담하게 생각했다. 외손주 분의 주니어 사이즈도 아는 마당에 뭘 더 물어봅니까. 그러나 장무기가 기대로 가득찬 얼굴을 하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는 별 수 없이 목을 가다듬고 아주 약간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무기, 혹시 형제 자매가 있다거나?”
“없어요 없어요.” 장무기는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이 몹시 흥분한 모양새였다. “쌍둥이도 아니에요.”
장무기의 보충 설명은 양소의 예상 범위 안이었다. 그는 미소를 띄운 채 적당히 “외동이 좋지 나라에도 애국이고” 따위 겉치레를 늘어놓았다. 이제 확실해졌다. 닮은 사람도 아니고, 쌍둥이도 아니다. 간밤 그와 함께 봄날을 보냈던 사람은 장무기임이 분명했다.
틀릴 수가 없었다. 어젯밤 깨물어 놓은 잇자국이 꼬마의 목덜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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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가 내일부터 우리 회사에 출근하지 않나.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적긴 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고 일도 적극적이니 잘 해 나가겠지?” 은천정은 가망이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판로를 뚫으려 부딪쳐 왔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도 적지만, 배우기를 좋아하고 적극적이다. 양소는 그 말을 소리 없이 입 안에서 반복하며 제 비밀도 함께 우물우물 삼켰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젊은이는 양소에게 잘 보이고 싶어했지만, 그는 너무 젊었고, 그 외에는 하나도 좋은 점이 없었다. 손길은 거칠었고 테크닉은 설익었다. 술김이었던 양소가 약간 부드럽게 대해 주지 않았더라면 섹스 중에 참사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매번 양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심스레 물어 왔고, 지질학도라도 된 것처럼 양소의 가르침을 따라 엄숙하게 그의 몸을 탐사했다.
양소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재미 보고 있는 건지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그러나 침대 위에서 서러운 꼴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키지 않는 맘으로나마 당시에는 이름도 몰랐던 젊은이를 차근히 이끌어서 산 넘고 물 건너 나오는 별천지의 풍경으로 데려가 주었다.
젊은이는 손가락으로 입구를 문지르며 진지하게 물었다. “들어가도 돼요?”
양소는 술을 좀 마시기는 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표정이 잘 조절되지 않는 수준이기는 했다. 본래 무적의 방벽이었던 직업적 미소가 약간의 짜증으로 물들었다. “안 된다고 하면 안 들어올 건가?”
그럴 리는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젊은이는 이미 불청객이 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채였다. 그는 불타오르는 흉기를 들고 마구잡이로 짓쳐들어와 속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았다. 머리가 좋았고 진도가 빨랐으며 힘은 아무리 써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양소가 가르쳐 줄 것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시달리다 못해 수명이 반쯤 줄어든 중년의 그는 처량하게 눈을 가린 채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좀 천천히, 하고 간청했다. 돌아온 것은 안심시키려는 듯한 질척한 입맞춤과 매번 더 지독해지고 사나워지는 움직임 뿐이었다. 세례처럼 쏟아지는 재해 속에서, 양소는 제 몸 속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지나온 길은 처절한 열락이었고, 나아갈 길은 뒤엉킨 광명이었다. 양소는 근면 호학하며 적극적인 이 젊은이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호텔을 떠날 때는 합작 관계를 장기적으로 발전시켜 볼까 하는 생각마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신의 올리브 가지를 내밀기도 전에 오랜 직장 동료가 주선한 소규모 맞선 자리에서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마음에 들었던 학생이자 미래의 합작 대상을 맞닥뜨리게 될 줄은 몰랐다.
예의바른 미소를 띄고 장무기라는 꼬마에게 인사를 건넬 무렵, 양소의 마음에 아침나절의 온화함 따위는 이미 흔적조차 없었다. 머릿속에서 모르모트가 길길이 뛰며 고함을 쳤다. 어제는 나랑 자고 오늘은 내 딸이랑 선을 봐? 양씨 집안을 아주 탈탈 털어 재미볼 셈이냐? 잘났군. 잘났어. 어디 해 봐라. 감히 내 딸을 건드리기만 해 봐. 제대로 손봐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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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정이 마련한 프로그램은 이제 장무기와 양불회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순서로 접어들었다. 비슷한 나이의 두 청년은 겹치는 화제도 퍽 많아서, 윗어른 두 사람이 보고 있는 자리인데도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농담을 듣고 깔깔 웃는 양불회를 보면서 양소는 속이 한바탕 뒤틀렸다. 그도 웃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목구멍에서부터 쓰린 것이 올라왔다. 아마도 레스토랑의 에어컨이 너무 센 탓이리라. 아니면 의자가 너무 딱딱하거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마.” 양소가 말했다.
“아, 잠깐만. 나도 같이 가지.” 은천정이 다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 두 명의 중노년 남성이 손에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는 모양새가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지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했다.
두 사람 모두 진짜 볼일을 보려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양소는 곧장 담배부터 꺼내들었다. 은천정에게 한 대 하겠느냐고 물으니 그는 끊었다고 답했다. 건강을 챙겨야지, 안 그러면 술을 못 마셔요. 이제는 몸이 옛날 같지 않아서 한 번에 몇 병 마시기도 힘이 든다네. 양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은천정이 물었다. “자네 담배 끊은 지 몇 년 되지 않았었나?”
은천정은 오늘따라 말이 많았다. 그는 이미 양소와 사돈이라도 된 것처럼 친절하게 그의 뜻을 헤아리고 위로해 주었다. “소양小楊, 너무 힘들어 하지 말게. 우리 애비들이야 그저 자식이 행복하면 그만이지. 딸이 좋다고 하면 자네가 무슨 방법이 있나? 자네 마음이야 나도 너무 잘 알지. 옛날 소소가 장취산에게 시집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어디서 살인청부업자라도 고용하고 싶었다니까.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어쩔 수 있었으면 무기가 저렇게 잘 크지도 못했어.”
양소는 그의 말이 끝날 때까지 골몰하는 얼굴로 듣다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저도 마침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해서 손자 분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입니다.”
은천정은 그가 농담하는 줄로 알고 크게 웃었다. “내 얼굴을 봐서라도 좀 봐 주게. 그냥 반만 죽여 놔.”
양소는 담배를 문 채 정중히 고개를 끄덕이며 모호하게 답했다. “그러죠. 목숨은 붙여 놓겠습니다.”
3
“양소 아저씨.”
은천정을 먼저 보내고 돌아오던 양소는 외할아버지의 손에 운명이 결정되어 버린 장무기와 마주쳤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아직 파악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흡연실이 화장실 문가 세면대 바로 옆에 있었으므로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아하, 조카님.” 양소는 끌 생각도 없었던 담배를 비벼 껐다. “볼일 보려고?”
“너무 오랫동안 안 오시길래 걱정이 돼서요.” 장무기가 말했다.
양소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꼬맹이가 벌써부터 잘 보이려고 안달이 났군. 내가 그 시커먼 속셈을 모를 줄 알고. 속이 그 모양이니 당연히 말투도 퉁명스러웠다. “이 나이에 길을 잃을 것도 아니고 누가 업어갈 것도 아닌데, 걱정할 게 뭐가 있다고.”
장무기는 얼굴이 온통 새빨개졌다. 양 뺨에서 귀까지 불이라도 붙은 것 같았다. 양소가 얘가 무슨 병이 있나 의심하기 시작할 무렵 그는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혹시…… 편찮으신 걸까봐.”
그 말은 지나치게 은근했다. 양소 역시 낯이 달아오를 뻔했다. 그러나 풍랑 속을 구른 세월이 몇 년인데 장무기 따위 실개천에서 배가 뒤집힐 일은 아니었다. “아주 멀쩡하다. 네 덕분에.”
장무기는 “네 덕분에”라는 한 마디에서 아주 약간의 새침함이 섞인 원한을 읽었다. 정말이지 무슨 말이든 몇 마디 변명을 하고 싶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는 별 수 없이 침묵을 지켰다. 양소 역시 더는 말이 없었다. 그는 가만히 눈을 내리깐 채 화장실에서 소리 없이 장무기를 해치워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반복해서 시뮬레이션하는 중이었다. 공기가 그대로 굳어서 보이지 않는 담이 되어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저, 양소 아저씨.” 은천정이 보내는 톡 소리가 쉼 없이 울려댔다. 두 사람 다 빨리 돌아오라는 재촉이었다. 장무기는 하나하나 다 읽고는, 자기 자신을 열심히 격려한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불회……”
“나는 허락 못 한다.” 양소는 장무기의 말을 인정사정 없이 끊으며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허튼 생각 마라, 조카님.”
“불회랑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장무기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정말로 그런 적 없습니다. 만일 제가 그런다면 벼락을 맞아도 좋아요. 맹세할게요.”
“그건 좀 심하군. 내가 네 외할아버지를 볼 낯이 없잖아.” 말은 그렇게 했으나 양소의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냥 적당히, 만일 그런 짓을 하면 곱게 못 죽을 거라는 정도로 해 둬.”
장무기가 별 수 없이 시키는 대로 다시 맹세한 뒤에야 양소는 눈매를 약간 누그러뜨렸다. 이제 적어도 천 리 밖으로 상대를 내던져 버리고 싶다는 수준의 냉담한 낯은 아니었다.
“잠깐만.” 양소는 뭔가 생각난 것처럼 의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럼 왜 나한테 이렇게 들러붙어?”
젊은이는 한참을 부끄러워하더니 수줍고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저, 저는 계속 보고 싶었어요. 다시, 다시 만나서, 이야기도 좀 하고요.”
“우리 오늘 아침 여덟 시 반에 헤어지지 않았나. 사랑꾼 흉내는 그만두지 그래, 조카님.” 양소는 웃는 듯 마는 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여전히 젊은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였다. “이야기 좀 할 기회를 줄 테니 말해 봐. 나를 만나서 뭘 하고 싶었는지.”
“아, 이걸 돌려 드리려고요.” 장무기는 허겁지겁 주머니에서 작은 비닐백을 꺼냈다. 조그마한 은제 장신구가 불빛 아래 반짝였다. “오늘 아침 호텔에다 두고 가신 거예요.”
양소는 무의식적으로 제 허전한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아.”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없더니, 네가 깨물어서 빠진 거였군.”
그는 반짝이는 귀걸이를 잠시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건네받는 대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하얗게 드러난 손목이 세면대의 센서에 가까워지자 곧장 물이 쏟아져 나와 손목을, 손바닥과 손가락을 흠뻑 적셨다. 장무기는 물소리에 섞여드는 양소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져.”
“가져도 돼요?” 장무기는 기뻐하면서도 주춤거렸다. 그 익숙한 대사가 밸브를 열어 젖히기라도 한 듯, 파편으로 조각난 지난 밤의 기억이 일순간에 들끓어 오르며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는 말없이 얼굴을 붉혔다.
물소리가 멎었다. 양소는 놀리듯이 말했다. “안 된다고 하면 안 가질 건가?”
그는 젖은 손으로 살며시 장무기의 뺨을 꼬집었다. 희미한 웃음이 피어오르듯 천천히 번졌다. “오늘 계속 생각하던 건데, 조카님. 표정 관리를 너무 못하더군. 어제 침대에서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화장실을 나서는 양소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장무기는 여기 세면대는 온수만 나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얼굴이 이렇게 뜨거울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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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소는 다리를 꼬고 소파에 앉은 채 TV에서 흘러나오는 연예인들의 농담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다. 불회는 간식 봉지를 끌어 안고 그의 옆에 앉아 연신 폰을 들여다 보며 가끔씩 작은 소리로 웃었다.
비록 장무기가 불회에게 불측한 마음을 품는다면 다섯 번이라도 벼락을 맞겠다는 맹세를 자청해서 했을지언정, 불회가 장무기에게 호감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성별을 제외하면 장무기와 양불회는 거의 하늘이 맺어준 한 쌍이라 할 만했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별 것 아닌 양 물었다. “무기랑 톡하는 거니?”
“네.” 불회는 스스럼없이 말했다.
“무기가 좋아?” 양소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있는 힘껏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좋아요. 무기 오빠는 좋은 사람이니까.” 불회의 대답에 양소는 온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불회는 장무기와 이모티콘 스티커를 주고받으며 한바탕 투닥거린 뒤에야 혼백이 다 나가 버린 중년의 싱글대디를 달래줄 생각이 들었다. “근데 무기 오빠랑 사귈 일은 없어요.”
양소는 일순 이유를 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기울여 딸을 바라보았다. 입꼬리를 아주 살며시 끌어올린 채 무의식적으로 느릿느릿 눈을 깜박이는 것이 무슨 자그마한 털동물 같았다.
불회는 부녀 간에 오가는 암묵적 요구와 시험에 이골이 날 대로 난 모범생이었다. “무기 오빠는 게이거든요. 커밍아웃한 지 한참 됐어요.”
도둑이 제 발 저리다더니, 양소는 이제 장무기가 둘 사이의 일을 불회에게 말한 것이 아닌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
“무기 오빠네 사촌동생 은리가 내 친구니까. 은리랑 나랑 호접곡 제1소학교 동창이잖아요. 지금도 우리 단톡방이 있는걸요.” 불회가 말했다. “그리고 그 날 본 것도 있고. 아, 아빠는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그 날 밥 먹는 내내 무기 오빠는 아빠만 보고 있었다고요. 눈이 아주 아빠한테 달라붙은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나는 무기 오빠가 정말 게이는 게이구나,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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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가 너랑 안 사귄단다.” 양소가 말했다.
장무기는 알고 있었다. 만일 지나치게 낙담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양소는 그가 불회에게 불측한 마음을 품었다고 의심할 것이고, 반대로 지나치게 좋아하면 불회가 너한테 어디가 모자라냐고 질문할 것이었다. 그야말로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장무기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성실하고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저야 불회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죠. 불회는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예요.”
“불회에 비하면 부족한데, 나에 비하면 안 부족한가 보지?” 양소가 물었다.
2번 문제도 있을 줄이야. 장무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양소 아저씨, 자꾸 놀리지 마세요.”
양소는 엄숙하게 얼굴을 굳히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회사에서는 직급으로 불러. 사심 없는 상하 관계로 대하고.”
그러나 그 눈에는 또렷한 웃음기가 감돌았다. 장무기는 그 웃음이 그려내는 동그라미 안에 갇혀 버렸다.
“보좌관님, 그럼 퇴근한 후에는요? 퇴근 후에는 사심 있는 관계도 괜찮습니까?”
“안 돼.”
양 보좌관은 봄바람처럼 온화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