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근현대/쌍면신탐(2021)

《쌍면신탐》 [팬픽션] 02 당신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세요

중국 蓝茵님의 드라마 쌍면신탐 팬픽션입니다. 커플은 왕대우X서무쌍. 한국어 번역 게재를 허락받은 글로, 타처 전재는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평소 핸들 한 번 내주는 법이 없던 서무쌍은 얌전히 조수석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운전 기술을 뽐낼 기회를 포착한 왕대우가 막 솜씨를 펼치려는데, 고개를 돌렸더니 서무쌍은 이미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 잠들어 있었다.

왕대우는 그에게로 몸을 기울여 안전띠를 매 주었다. 차 안 공기가 아직 싸늘해서인지, 상대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려 그의 어깨로 뺨을 기댔다.

청년은 일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손바닥으로 살며시 얼굴을 받쳐 어깨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서 대장님…….”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뒷말은 더 나오지 않았다.

길지 않은 동거 생활 중 동거인의 자는 얼굴을 관찰할 기회는 얼마든지 많았다. 하지만 서무쌍은 잠들어 있을 때조차 고양이처럼 예민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기척이 있으면 바로 깨곤 했다. 젊은 제자는 처음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연상의 얼굴을 훑어볼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대놓고 빤히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처럼의 깊은 꿈을 방해할 것 같았다.



서무쌍이 깨어났을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느릿하게 깨어나서, 기숙사 야외 주차장이라는 것을 느릿하게 인식하고, 느릿느릿 온몸을 길게 폈다. 허리의 시린 통증이 이제는 밤새 잠복한 다음 날에도 용과 범처럼 날뛸 수 없는 나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조수석의 시야각은 그에게는 드문 경험이었다. 그는 몇 초쯤 멈칫했다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곁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대형 SUV도 188(.5)이라는 키에 대면 협소해 보였다. 왕대우는 길쭉한 팔다리를 웅크린 채 무릎 위에 놓인 음식 용기 안에…… 석류를 한 알 한 알 까 놓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깠는지 기름한 열 손이 모두 반들반들 석류빛으로 물들었다. 이름 모를 보석이 손끝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듯했다.

“뭐해?”

“서 대장님, 깨셨어요?” 왕대우는 반쯤 깐 석류를 계기판 위의 봉지에 넣어 놓고, 휴지를 한 장 뽑아 손을 닦았다. 무릎 위 용기는 벌써 거의 가득하게 찼다. 한참이나 그것을 까면서 서무쌍이 깨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서무쌍은 조금 머쓱해져서 그의 반짝이는 눈빛을 피했다. “잠들어서 미안하다. 먼저 올라가지 않고 뭐 했어?”

왕대우가 용기를 그에게 건넸다. “그냥 기다렸어요. 같이 가야죠. 좀 초조해하시는 것 같길래 오는 길에 석류도 사고요. 비타민 보충하세요.”

9월은 석류가 나오는 계절이다. 장강 이남에 자리한 수성은 여름이 긴 곳이었다. 열대 과일은 풍부했지만 석류는 비교적 드물었다. 왕대우는 과일가게 앞에서 한참을 배회했다. 가게 주인은 그가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적극적으로 불렀다. “젊은이, 우리 스타프루트가 아주 싱싱해요. 잘라 드릴 테니까 맛 좀 봐요.”

왕대우는 두리안의 기억이 떠오르는 바람에 더더욱 이리 고르고 저리 따졌다. 한참을 이것저것 골라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서무쌍은 그와 같은 진해 사람이다. 아마 수성 현지 입맛이라고 추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은 어마어마하게 큰 석류를 두 개 샀다. 수성시 과일가게는 어디든지 과일을 껍질 벗겨 썰어 주는 친절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었다. 주인은 그가 석류를 집어 들자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청년은 그의 속마음을 단번에 꿰뚫어 본 것처럼 방긋 웃더니 그냥 주셔도 괜찮다고 했다. 그는 봉지를 받아들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문밖으로 사라졌다.



“석류 드실래요?” 왕대우는 떠보듯 물었다. 서무쌍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소년의 손끝에 묻었던 과즙은 완전히 닦이지 않아서, 손가락이 마주 닿는 순간 조금 끈적이는 느낌이 났다. 서무쌍은 아주 살며시 피했다. 왕대우의 손이 쫓아와 그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명백히 고의다. 서무쌍은 눈을 치뜨고 노려보았다. 제자는 순식간에 얌전한 표정으로 돌아오더니 웃으면서 손을 거두고 제 손끝을 빨았다. “죄송해요. 물티슈가 없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무쌍은 벌써 입술 사이에서 석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조금 달콤하고, 조금은 떫었다. 느껴본 지 너무나도 오래된 감각이다.

서무쌍은 석류가 담긴 그릇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왕대우가 차를 돌아 다가와서 곁을 따랐다. 그는 덜 닦인 손을 어리바리하게 치켜든 채 위아래로 서무쌍의 얼굴을 훑더니, 다시 석류를 쳐다보았다.

“서 대장님, 우리 사이가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그는 환호작약하듯 말했다.

“너 관계라는 것에 대해 좀 오해하나 본데.”

“하지만, 앞으로는 내 차에서 음식 먹지 말라는 말도 안 하셨잖아요.” 꼬맹이가 등 뒤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드나들던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서무쌍은 뒤돌아 뭐라 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걸음을 빨리해 멀어졌다.



다음날 왕대우는 늘 그렇듯 일찍 일어나서 서무쌍을 따라 시국으로 갔다. 내부 인력을 의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모든 의심은 증거를 통해 증명해야만 한다. 서무쌍은 미리 원 국장에게 간단한 보고를 해 두었다. 몇몇 인물의 인적사항 문서 파일을 열람하고 싶다고 했다.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는 상부에서는 당연히도 그들더러 직접 찾아와 제대로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

처음으로 원 국장의 사무실에 와 보는 왕대우는 커다란 몸뚱이를 조그맣게 뭉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무리 움츠려 봐야 네 조그만 사부가 너를 가려줄 수 있겠느냐고 원세청은 속으로 비웃었다. 어린 제자는 그에게 갓 찾아온 시절의 서무쌍과 조금도 닮은 데가 없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두 제자를 비교해 보았다. 서무쌍은 천성이 타인과의 교류에 익숙하지 않았다.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쌓기 어려웠다. 왕대우는 겉으로는 붙임성 좋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친소와 원근이 확고했다. 사람을 천 리 밖으로 밀어내는 서무쌍보다도 뚫고 들어가기 어려웠다.



“어디 이야기해 봐.” 원세청은 막 우려낸 찻잔을 두 사람 앞에 놔 주었다. 서무쌍이 왕대우에게 손짓했다. “대우가 가장 먼저 발견했으니 대우더러 보고하라고 하지요.”

서무쌍은 본래 말수가 적기는 했지만, 그것은 남의 공을 빼앗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남의 윗사람답게 구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원세청은 그만 슬쩍 웃고 말았다. 왕대우는 서무쌍을 쳐다보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서철을 열었다. CCTV 화면 인쇄물을 꺼내 놓고 원 국장에게 처음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다 듣고 난 원세청은 펜으로 인쇄물 한 곳을 쿡 찍었다. “그러니까 여기 소소(小蘇)의 인적사항을 확인해 봐야겠다는 거군.” 그는 말을 잠깐 끊었다. “비밀스럽게.”

“예.” 서무쌍이 말했다. “갖고 나가지도, 복사하거나 사진을 찍지도 않을 겁니다. 그냥 잠깐 보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 무슨 비밀이 있나? 네가 직접 따져 봐. 지금 내가 서명하면 중간에 몇 급을 뛰어넘는 거지? 순식간에 온 시국 전체가 다 알게 될 거다. 집안에 바퀴가 한 마리 보이면 그 건물에는 이미 바퀴 가족이 숨어 사는 거라는 말, 들어 봤을 텐데.”

서무쌍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주 오래전, 어린 제자의 눈은 목표에 닿지 않으면 결코 그만둘 줄 몰랐었다. 지금도 그때와 한결같았다. “확인만 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신속하게 진행하겠습니다. 결과는 제 책임입니다.”

원세청은 그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네가 어딜 나서?” 시늉만 했을 뿐인데 옆에서 꺽다리가 튕기듯 일어나더니 벌써 손을 들어서 막고 있었다. “원 국장님, 그러지…….”

세 사람 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서무쌍은 낮게 일갈했다. “앉아.” 대형견은 풀이 죽어 제자리로 돌아갔다. 커리어를 통틀어 야옹이 제자 하나밖에 가르쳐 본 적이 없는 원 국장은 내심 부러워졌다. 그때 눈이 삐끗하는 바람에 손 많이 가고 마음 쓰이는 제자만 두었으니 후회되는 일이었다.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고 할 일은 해야 했다. 원세청은 서명을 끝낸 탁자 위 열람 신청서를 서무쌍에게 건넸다. “누가 가려고? 네가?” 입으로는 그렇게 물었으나, 서무쌍이 받아들었을 때도 그는 신청서를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원세청은 희로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서무쌍은 아주 조금만 답이 빗나가도 이 종이 한 장을 놓칠 것을 잘 알았으므로 왕대우를 가리켰다. “같이 가겠습니다.”

원 국장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신중하게, 규정대로 해.” 그는 다시금 눈앞의 두 사람을 훑었다. “안전이 가장 우선이다.”



국장 사무실에서 나온 왕대우는 우선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서무쌍이 그를 비스듬히 바라보았다. “원 국장님이 그리 무서워?”

왕대우는 끄덕였다. “당연하죠. 학교에서도 다 아는 전설적 인물이셨는데요. 저는 수업도 들어 봤어요. 150명짜리 대형 강의였는데, 첫 시간에 학생 전원을 다 외우셨어요.”

“수업 빼먹은 적은 없고?” 그들은 시국 사무동의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 대부분이 서무쌍을 알아보고 미소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시국 전체가 알게 될 것이라던 원 국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어떻게 그래요?” 왕대우가 얼굴을 찡그렸다. “왜요? 혹시 옛날 서 대장님은 국장님을 자주 화나게 만드셨어요?”

서무쌍은 속으로 말했다. 어디 옛날뿐일까. 지금도 마찬가지지.

그들은 나란히 문서실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종이 문서의 장기 보존에 적합하도록 시국의 문서실은 사무동 지하 이 층에 건립되어 있었고 전화 신호도 통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와 본 왕대우는 몹시 신기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딩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서무쌍이 앞서서 걸어갔다. 문서실 입구에는 철제 방범문이 세워져 있었다. 문 너머에서 제복을 입은 젊은 경관이 일어서더니 그들에게 경례를 붙였다.

서무쌍은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왕대우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인사처 어디 있는지 알아?” 서무쌍이 물었다.

왕대우는 안다고 대답했다.

“인사처에 있는 소양(小楊)한테 가 봐라. 내가 거기 둔 문서 찾으러 왔다고 해.” 왕대우가 거부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서무쌍은 가까이 다가섰다. 낮게 내리누른 목소리였다. “소소 그자에 대해 좀 알아봐. 어떻게 들어왔는지, 채용 과정에 수상한 데는 없었는지. 둘로 나뉘어 움직이고 열 시 반에 주차장에서 합류한다.”

청년은 주저했다. “방금 원 국장님한테는…….”

서무쌍은 그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연상의 건조한 손바닥이 아주 기교 있는 손놀림으로 멍멍이의 털을 쓰다듬었다. “효율적으로 가자고, 효율적으로. 알겠어?”



왕대우는 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길을 잘 찾았다. 아주 효율적으로 인사처에 도착해 둥글둥글한 얼굴의 젊은 남자와 마주했다. 소양은 키가 아주 컸고 상냥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왕대우와 그는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사회적 교류에 이골이 난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굴었다. 참 이상하다. 왕대우는 생각했다. 그냥 봐서는 서 대장님이 좋아할 것 같은 유형이 아닌데. 이 사람에게서 뭘 가져오라는 걸까.

소양은 그가 서 대장의 제자라는 말에 더욱 상냥해졌다. 자리를 권하고 찻잔을 내주고 하더니 요즘 신안분국에 별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왕대우는 이미 선입견이 생겨서, 서 대장과 퍽 사이가 가까운 듯한 젊은이에게 별 호감이 없었다. 정작 소양은 아무것도 모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본래 자신도 신안분국에 배치된 적이 있어서, 서 대장이 한동안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는 것이다.

할 말이 없어서 하필 그 이야기야. 왕대우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는 마뜩잖은 기분으로 상황에 관해 물어보았다.

파출소에서 신안분국으로 파견된 소소에 관해 묻자 소양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음, 제가 시국으로 돌아온 뒤의 일인데요. 소소는 학교 출신이 아니라 직장에서 일하다가 시험 치고 들어왔죠. 예전에는 아마…… 어디 무역 회사에서 일했다던가.”

그들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리더니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들어왔다. “인사처장 어디 있나?”

소양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원 국장님, 안녕하십니까. 처장님은 아침에 회의가 있어 나갔는데요.”

원세청은 여기서 왕대우와 마주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발걸음이 멈칫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네 사부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나 그 어조의 다급함에 왕대우는 겁을 먹고 말았다.

그는 외부인 앞에서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몰라 얼버무렸다. “아래층에 있습니다.”

원 국장은 문 앞에서 비켜섰다. “그리로 가. 지금 당장. 무슨 일 있으면 내게 전화하고.”

왕대우는 어떤 예감이 솟구쳤다. 그는 다급하게 인사하고 곧장 뛰쳐나갔다. 온 길대로 돌아가지 않고 문서실 방향으로 줄곧 달렸다. 전용 엘리베이터는 어째서인지 운행이 정지된 상태였다. 이쯤 되니 원 국장이 무엇을 걱정한 것인지, 서무쌍은 또 왜 그를 떼어놓은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복도에서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았다. 상대는 그에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알려주었다.

왕대우는 단숨에 일곱 층을 뛰어 내려갔다. 지하 문서실에 도착했을 때는 셔츠가 땀투성이였다. 엘리베이터 입구의 철문을 지키는 관리자는 아까와 다른 사람이었다. 숨이 끊어질 것처럼 뛰어 내려온 그의 기세에 놀라서 바로 손을 들어 전화를 걸려 했다.

왕대우는 문으로 닥쳐들었다. 그는 신분증을 문에 들이대고 보여주었다. “들여보내 줘요. 방금 들어간 경관은?”

상대의 손은 여전히 전화기에 가 있었다. “아무도 안 왔는데요. 당신…….”

왕대우는 철문의 봉 사이로 손을 넣어 그를 움켜잡았다. 팔이 길쭉한 데다 워낙 거센 기세라 단숨에 탁자에서 떼어낼 수 있었다. 상대는 문간까지 끌려와 콰당 부딪쳤다. “당장 문 열어. 내 말 안 들려?”

관리자는 어쩔 줄을 모르고 몸부림쳤다. 셔츠가 다 찢어질 것 같았다. “못 열어! 아무 절차도 없이 와 놓고, 게다가 안쪽은 소방 훈련 중이라 들어갈 수 없…….”

발버둥 치던 그의 허리께에서 출입 카드가 떨어졌다. 왕대우는 카드와 사람을 한데 잡아끌고 센서 자물쇠까지 당겼다. 상대의 처절한 고함 속에서 딩동 하고 문이 열렸다.

왕대우는 그를 문 안에 내버리고 뛰쳐 들었다. 이곳의 복도는 하나같이 좁고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었다. 방문은 모두 꽉 닫힌 채였다. 그는 복도를 미친 듯이 달리며 문을 하나하나 두드렸다. “서무쌍! 어딨어요? 서무쌍!”

그렇게 소란을 피워대니 지하에 있던 사람 모두가 놀라서 하나둘 문을 열고 나왔다. 경찰국 문서실에 누군가 뛰쳐 드는 일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다. 한동안은 다들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왕대우는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을 틀어잡고 물었다. “소방 훈련하는 데가 어디죠?”

상대는 반문했다. “당신 누구야?”

“문서실에 지금 사람이 있다고요! 소방 훈련하는 곳이 어디예요?”

그는 온몸이 흠뻑 젖었다. 얼굴에 흐르는 것이 땀인지 눈물인지도 알 수 없었다. 상대는 기세에 놀라 저도 모르게 가리켰다. “저쪽 문서실인데…….”

왕대우는 비틀거리며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뛰었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복도에서 번쩍이는 붉은 경고등이 보였다. 굳게 닫힌 철문 너머 글자가 끊임없이 점멸하고 있었다. “가스 살포 중, 출입금지.” 그는 문 앞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당겼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 열어요! 안에 사람 있다고요!”

담당자가 그를 뒤쫓아 뛰어왔다. “그럴 리 없어요. 확인 다 마쳤습니다. 게다가 소방 가스는 유해물질이라, 이상 없다고 확인되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왕대우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당겨서 안 열리니 주먹으로 때리고, 때려서 안 열리니 발로 걷어차고, 발로 차서 안 열리니 온몸으로 부딪쳤다. 복도 전체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경고음과 사람의 몸이 한 번 또 한 번 강철에 부딪히는 소리뿐이었다.

얼마나 부딪쳤는지 알 수 없었다. 신체의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왕대우는 그저 쉬지 않고, 절망적으로, 대체 언제쯤 열릴지 알 수 없는 문을 들이박았다.

문득 철제 자물쇠에서 콰당 소리가 났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문을 들이받았다. 뒤에서 연달아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어요. 국장님,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그는 어렴풋이 문이 열렸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 그 몇 글자보다 더 구원이 되어줄 말은 하늘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실에 매달린 나무 인형처럼, 그는 문을 당겨 열고 뛰쳐들어갔다.

문 안은 별세계였다. 자욱이 깔린 농후한 안개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줄곧 앞으로 달려가다가, 몇 발짝 가지도 못하고 바닥의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서무쌍! 서무쌍!” 왕대우는 바닥에 쓰러진 채 부르짖었다.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뼈가 녹아 없어진 것처럼 손발에 힘이 풀렸다. 목구멍으로 흘러드는 기체는 타오르는 불길 같았다. 부르는 목소리마저 금세 쉬어빠졌다.

그는 엎드린 채 엉금엉금 더듬어 나갔다. 겹겹이 늘어선 책장을 돌아간 끝에 드디어 열 손가락이 싸늘한 벽에 닿았다.

“서무쌍, 서무쌍, 서무쌍…….”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힘이 물 흐르듯 몸에서 사라져 갔다. 왕대우는 자신이 서무쌍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지 아니면 울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서무쌍, 서무쌍. 서무쌍…… 제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