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蓝茵님의 드라마 쌍면신탐 팬픽션입니다. 커플은 왕대우X서무쌍. 한국어 번역 게재를 허락받은 글로, 타처 전재는 삼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주 길다고는 할 수 없는 형사로서의 삶 속에서, 서무쌍은 생사의 갈림길을 적잖게 직면해 보았다. 죽음에 접근했다고 죽음의 면모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질 뿐이다.
삶과 죽음의 거센 물살은 진실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한 엷은 안개로 덮여 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끝없는 강을 언제쯤 건너게 될지는 영원히 모른다. 형사가 다른 수천수만 사람과 다른 점은, 안개로 온통 덮였음을 훤히 알면서도 그 강을 왕복한다는 것이다.
이제 서무쌍은 또다시 그 안개의 숲속에 섰다. 두려운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사실 조금은 기대되기까지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모두 강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이니까. 그러나 안개 속에서 누군가가 무엇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그 손이 풀리지 않아서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서무쌍…….”
그는 조금 신경질이 났다. 꽥꽥 소리나 질러대고, 네가 개야?
하지만 갈 곳 없는 멍멍이에게 모질게 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사무실 주임과 그의 두 조수까지 나섰어도 원 국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게 둘 수는 없었으므로 이제는 이를 악물고라도 억지로 들어가야만 했다. 흰 기체는 흩어지고 있었으나 여전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몽롱한 시야 속에서 원 국장이 허리를 숙여 서무쌍을 왕대우의 두 팔로부터 받아드는 것이 보였다. 혼절한 사람은 묵직하고 나른해서, 빛이 꺼져가는 한 줄기 별의 강을 품에 안는 것 같았다. 원세청은 한 번 시도해 보았지만 안아 들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옆의 청년이 눈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서무쌍의 얼굴을 받쳐 들고 어떻게든 움츠러들지 못하게 하려 했다. 호흡할 공간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었다.
서무쌍은 아무 자각도 없이 제 목숨을 살리려는 노력에 저항하고 있었다. 왕대우가 그의 턱을 받쳐 들 때마다 번번이 고개를 돌렸다. 원 국장이 등 뒤에서 그의 어깨를 비틀어 잡았다. 자그마한 남자는 격통에 균형을 잃고 뒤로 기울었다.
“무쌍, 무쌍.” 원 국장은 서무쌍의 등을 다독였다. “금방 괜찮아질 거다.”
남자는 섬세한 목을 거의 꺾일 듯한 각도까지 추어올렸다. 왕대우는 저도 모르게 부축하려 손을 내밀었다. 거의 닿을 듯한 거리에서 서무쌍은 갑자기 경련하더니 몸을 앞으로 확 숙였다. 선혈이 목구멍에서 터져 나와 왕대우의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지막 한 가닥 힘까지 다 써 버린 것처럼 서무쌍은 소리 없이 허물어졌다. 제자가 뻗은 손은 그렇게 어긋났다.
청년은 누군가에게 목을 틀어 잡힌 것처럼 짧고 급박한 신음을 흘렸다. 제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도 받쳐 든 양, 붉은 피로 넘쳐나는 두 손을 멍하니 든 채였다.
“왕대우.” 여전히 별다른 파란이 느껴지지 않는 원 국장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모든 사람의 귀를 파고들었다. “네 사부를 데리고 나가라. 당장.”
왕대우는 듣고 있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억지로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는 서무쌍을 가로 안아 들었다. 알아서 길을 비킨 사람들의 주시 아래, 청년의 손에 가득한 붉은 피가 그의 걸음을 따라 방울방울 복도로 떨어졌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뭔가를 건너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눈에 들어온 것은 침대 옆 하얀 걸상에 쭈그리고 앉아 석류를 까는 데에 집중한 왕대우의 모습이었다. 그는 키가 몹시 커서 그렇게 움츠릴수록 우스워 보였다. 서무쌍은 지금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밤을 새우며 담배를 피운 후의 불편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억지로 입을 열어 보았다. “왕대우…….” 통증이 뒤이어 덮쳐왔다.
언제나 말 잘 듣던 제자는 놀랍게도 그를 무시하고 여전히 석류만 까고 있었다. 서무쌍은 조금 짜증이 났다. 왜 그런 걸 하고 있어? 먼젓번에 까 놓은 것도 아직 다 못 먹었잖아? 그리고 지금 그는 정말로, 몹시도, 물이 마시고 싶었다.
갈증 담긴 시선은 퍽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청년은 길게 한숨을 쉬더니 손가락을 폈다. 석류가 한 알 한 알 아래로 떨어졌다. 서무쌍은 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그맣고 영롱하게 빛나는 석류알이 다 떨어지고 나니 다음으로 눈물이 방울방울 창백한 손가락 틈을 스쳤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무수한 언어를 이기는 종류의 고요였다. 서무쌍 자신도 작고 작은 석류알로 변해 그의 그물 속으로 빠져든 것 같았다.
소방 가스의 독성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호르몬을 투여하자 증상은 금세 호전되었다. 그러나 이미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밤만 되면 세상을 뒤집어엎을 기세로 기침이 터졌다. 의사는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말했다. 서무쌍은 고개를 끄덕여 알았다고 했을 뿐, 기침하느라 말할 틈을 찾지 못했다.
간병해 줄 분은 계신가요? 의사가 물었다.
서무쌍은 손을 내저었다. 그때 왕대우가 굳은 얼굴로 들어오더니 세숫대야를 콰당 내던졌다.
“뭐하시는 겁니까? 뭐예요?” 의사가 눈을 부릅떴다. “병동 혼자 쓰세요?”
청년은 즉각 꼬리를 내렸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간호할 거예요.”
의사는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아이고, 간병하러 오셨다고요. 나는 또 사람 치러 오신 줄 알았네요.” 의사는 당연하게도 왕대우가 간병하기 싫어서 못되게 군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다친 경찰에게 조금 동정을 품고, 환자가 일어나 반쯤 기대앉도록 도와주었다. “저녁에 힘들면 이렇게 기대서 조세요. 누우면 기침이 나올 거예요. 가끔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무슨 일 있으면 간호사 부르시고요.”
왕대우가 와서 환자를 넘겨받았다. 의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훑어보더니 서무쌍에게 무슨 일 있으면 부르세요, 하고 다시금 당부한 뒤에야 떠났다.
왕대우는 기다란 다리를 뻗어 침대에 반쯤 걸터앉더니 뒤에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서무쌍은 베개를 가리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기, 저 베개나 받쳐 줘.” 기침이 너무 심해서 목이 고스란히 쉬었다. 몇 마디 하는 것만으로 아파서 얼굴이 다 일그러지고 말았다.
왕대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는 서무쌍을 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기댈 수도 안 기댈 수도 없었다. 인간 베개는 솜 베개보다 훨씬 다루기 힘들었다.
억지로 안 기대려고 버텨 보았으나 왕대우는 털끝만큼도 물러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픈 서무쌍은 얼마 가지 않아 눈앞이 어두워졌다. 제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몸이 이리저리 기우뚱거렸다. 말만큼 커다란 청년이 두 팔을 뻗어 그를 감싸 안으며 낮게 물었다. “졸리세요?” 원래 그는 속에 울화가 가득했다. 서무쌍이 그를 버려두고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부가 꾸벅거리며 어떻게든 졸지 않으려고 정신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니 금세 마음이 풀리고 말았다. 어조는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서무쌍은 퍼뜩 놀라 깨어났다. 막 입을 열려는데 왕대우가 다시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한동안 목을 쓰지 않는 편이 좋대요.” 그는 한쪽 팔을 뻗더니 새하얀 손바닥을 서무쌍에게 내밀었다. “써 주세요.”
종이라도 주면 안 되나? 입원까지 했으니 사부로서 명분이 딸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종이 생각도 속으로 되뇔 수밖에 없었다. 서무쌍은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손바닥에 써나갔다. “들어가…….”
‘가’를 다 쓰기도 전에 손이 확 오므라들더니 그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말씀드렸잖아요. 오늘은 제가 곁에 있을 거예요.”
서무쌍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의 손바닥을 펼쳐서 다시 썼다. “옆 침대로 가…….” 아까보다 획이 많고 복잡한 글자들이었다. 왕대우는 가까이서 들여다보려고 서무쌍의 어깨에 턱을 걸쳤다.
“우선 주무세요. 저는 좀 이따 갈게요.” 보송보송한 머리카락이 줄곧 서무쌍의 목을 간지럽혔다. 작은 동물이 애교를 부리려다 소리 없이 다가와 비비기만 하는 듯했다. 서무쌍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낮에 겪은 난리로 기력이 다했다. 왕대우의 손목을 쥔 채 자신도 뭐라는지 모를 글자를 이리저리 쓰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의사의 말이란 좋은 일은 빗나가고 나쁜 일은 들어맞는 법이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몽롱한 가운데 숨이 막혔다. 얕은 연못에 빠져들어 가라앉았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듯했다. 서무쌍은 저도 모르게 급한 숨을 들이쉬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뒤에서 커다란 누군가가 그를 팔로 감싸안아 가슴팍에 눌렀다. 뼈마디가 배겼다. “괜찮아요. 다 됐어요. 천천히, 괜찮아요.”
다음 날 아침 처음으로 문병을 온 사람은 형국량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무쌍이 베개에 엎드려 링거 바늘이 꽂히지 않은 팔을 베고 잠든 것이 보였다. 왕대우는 작은 걸상에 구겨져 앉아 링거액이 들어가는 손을 잡고 있었다.
아픈 놈은 달게도 자고, 안 아픈 놈은 그늘이 광대까지 내려왔다. 형국량은 웃었다. “네 사부 하룻밤 돌보기가 밤새 사건 조사하는 것보다 힘든가 보구나.”
왕대우는 소리 없이 하품했다. “밤새도록 기침을 해서요. 새벽 다섯 시쯤에야 조금 좋아진걸요.”
살짝 움직인 것뿐인데 서무쌍은 곧장 깼다. 그는 팔을 뻗어 왕대우의 손가락을 쥐었다. 형국량은 또 웃었다. “달라붙는 것 좀 봐. 어린아이 같구먼.”
왕대우가 다가갔다. “일어나셨어요? 물 좀 드릴까요?” 그는 서무쌍을 일으켜 앉혀 주었다.
형국량은 그가 완전히 깨어난 뒤에야 침대 발치에 앉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무쌍, 그런 식으로 개인적 영웅주의를 내세우면 안 되지. 대우가 조금만 늦었어도 넌 어제 거기서 끝장났을 거다. 쪽팔리게.”
서무쌍은 토론을 시도하려다 기력이 부족해 그만두었다. “원 국장님 말씀이 맞았던 거지. 시국에 지켜보는 눈이 있었어. 어차피 보는 눈이 있다면 감추고 숨겨서 못 보게 하느니, 차라리 내가 뭘 할 건지 알려줘서 끌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어.” 그는 멈칫했다. “역시 놈이 나섰잖아. 이만큼 일이 커졌는데 그놈 하나 못 찾아낸다고는 하지 마.”
형국량이 손을 저었다. “관둬. 무슨 네 예측을 내가 예측했다는 것도 아니고.”
서무쌍은 뭐라 더 말하려 했으나 즉각 제지당했다. “지금 넌 피해자 신분이야. 이번 일이 사고든 사건이든, 형사로서는 손 떼야 할 일이란 말이다. 내가 규정까지 외워 줘야 해?”
대대장이 몸을 돌리자 아직 남은 위엄이 줄곧 말 없던 왕대우에게까지 미쳤다. “너도 마찬가지야! 네 사부가 조금이라도 규정을 어기려 들면 새싹만 보여도 짓밟는다. 알겠나? 이번 작전의 임무이니 반드시 완수하도록!”
성지를 받든 왕대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형 대장님.”
옆에서 일방적으로 조치당한 피해자가 툴툴거렸다. “내 폰 내놔. 전화해야…….”
형국량이 말했다. “무슨 폰, 보지도 못했는데.” 그는 서무쌍이 팡 터질 기세인 것을 보고 달래는 어조로 다시 말했다. “원 국장님 기분도 좀 생각해. 우리보다 더 정신없이 애먹고 계시는 판이야. 원래는 오늘 같이 오시려고 했는데 너무 소란스럽겠더라고. 어제도 너 구급차 타고 같이 오셨단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말렸어.”
서무쌍은 금세 이해했다. 신안구 센터병원은 이급 기관에 불과해 행정상으로는 급이 낮은 편이었다. 어제 원세청이 구급차에 타고 온 일만으로도 병원 위아래가 기겁했을 것이다. 또 찾아와서 남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
문병도 마쳤고, 규율도 강조했고, 성지도 전달한 형 대대장은 만족스럽게 작별을 고했다. 왕대우는 서무쌍더러 도로 자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자 서무쌍은 또 전화기를 찾았다.
왕대우가 난감해했다. “아마 어제 망가졌나 봐요…….”
“적당히 해라. 형국량은 본 적 없다, 너는 망가졌다, 속여넘길 셈이면 둘이서 말이라도 맞추지 그래?”
왕대우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제가 망가뜨렸어요.”
무수한 범죄자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시선이 그를 훑었다. 왕대우는 이를 악물었다가 말했다. “어제 응급처치를 받고 계실 때, 아주머니가, 대장님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어요.”
서무쌍은 즉각 낯빛이 변했다. 그는 막 이불을 떨치려다가 다시 왕대우에게 내리눌렸다. “별일 없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다 바늘 빠져요!”
“제가 받아서, 저는 제자라고 말씀드렸어요. 전화기가 망가져서 신호가 잘 안 통하길래 제가 수리 맡기러 가고 있다고요.”
“뭐라셔?” 다급하게 묻는 바람에 또 한바탕 기침이 터졌다. 왕대우가 그의 곁에 앉아 가만가만 등을 토닥여 주었다.
“제 말대로 믿으시던걸요. 고맙다시면서, 제자한테 그런 개인적 일까지 시키냐고 투덜거리셨어요. 그리고…….” 그는 웃었다. 손바닥이 상대의 튀어나온 견갑골을 살며시 스쳤다. 하늘이 낸 것처럼 각도가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더러 잘 지켜봐 달라고까지 하셨는데요. 진짜 맞선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의 출신, 그의 일, 그와 피가 이어진 사람의 일 같은 사소한 사실 하나하나도 모조리 재미있게 느껴지는 법이다.
서무쌍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보이스피싱 예방 상식이라곤 조금도 없으시군.”
이틀 만에 처음으로, 왕대우는 크게 웃었다.
저녁이 되자 제염과 나욱동이 문병하러 왔다. 크고 작은 봉지에 과일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서무쌍은 이마를 짚었다. “듣자 하니 그 두리안…….”
나욱동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진짜로 제가 사라고 한 거 아닙니다.”
왕대우는 방글방글 웃으며 둘에게 물을 따라 주었다. “네네, 제가 멋대로 샀습니다. 됐죠?”
나욱동은 컵을 받아들더니 가까이서 낮게 말했다. “둘만의 세계네, 좋겠다.”
규정에는 문병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무쌍의 특수한 신분 덕에 병원에서도 그리 엄격하게 단속하지 않았다. 한동안 이야기하던 끝에 문병 온 사람, 병이 난 사람 할 것 없이 침대 하나에 다 올라앉았다. 그들은 둥그렇게 둘러앉아 단어 맞히기 놀이를 하기로 했다. 서무쌍은 사건 진전을 탐색해 볼 생각에 다들 놀게 두었다.
나욱동이 왕대우의 노트에서 빈 페이지를 가닥가닥 기다랗게 찢어 모두의 이마에 붙였다. 앞에 앉은 사람과 주고받으며 자기 종이의 답을 맞히는 놀이였다. 주제는 영화 제목으로 한정했다. 서무쌍은 얼굴에 드리워진 종잇조각을 가볍게 불었다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제염은 블랙위도우, 나욱동은 아쿠아맨이었다. 왕대우 것이 퍽 우스웠다. 반짝이는 눈 위로 커다랗게 한 줄이 쓰여 있었다. 멍멍대작전.
그럼 내 답은 아마 미션 임파서블이나 007 같은 거겠지. 그는 속으로 생각하다 왕대우의 눈빛이 제게로 오는 것을 보았다. 시선이 이마에 잠시 머무르더니, 명랑한 웃음기가 눈동자까지 가득 어렸다.
007을 보는 눈이 아닌데.
왕대우의 차례가 되자 청년은 책상다리를 틀고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저랑 상관있는 거예요?”
서무쌍은 생각할 것도 없이 말했다. “있지.”
“어느 개의 사명!”
세 사람은 폭소를 참지 못했다. 제염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식, 자기 포지션 인식이 아주 정확한데.” 그는 조금 부끄러워져서 서무쌍을 쳐다보았다. 상대는 고개를 저었다.
청년은 망설였다. “충견 하치?”
“틀렸어.”
“아오.” 그는 고개를 마구 젓더니 서무쌍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쓰다듬어 달라는 듯했다. “힌트 좀 주세요. 멍멍이 영화는 너무 많잖아요.”
서무쌍은 생각하더니 말했다. “사실 제목은 관련이 있는데, 영화 자체는 너와 별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멍멍대작전?”
나욱동이 풉 하고 터졌다. “그래서 뭔가 작전 중이기는 하다 이거군? 무슨 작전인데 나랑 염 누나한테는 말도 없이 서 대장님에게만 말씀드렸어?”
왕대우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비밀 임무거든요.”
서무쌍이 맞힐 차례가 되었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우선 007과 미션 임파서블을 대 보았고, 역시 예상했던 대로 둘 다 답이 아니었다.
“대체 뭐야?” 서무쌍은 다소 욱했다. “사람 이름이야, 아니면 장르명 같은 거야?”
“잘 생각해 보세요.” 왕대우가 달랬다. “본인이라고요.”
서무쌍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게 무슨 힌트야?” 사색에 잠길 때면 그는 습관처럼 살며시 눈을 내리뜨곤 했다. 부드러운 눈꼬리에 아직 덜 가신 붉은 기운이 엷게 드리웠다. “홈즈?”
“틀렸어요.”
“또 틀렸어? 안 할래. 난 영화 별로 안 봤어.”
“안 하실래요?” 왕대우는 고개를 기울여 아래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확인했다.
“안 해. 뭔지 봐야…….” 이마에 붙은 종이를 떼려는 그의 손을 왕대우가 잡았다. 어린 남자아이는 여전히 일부러 아래쪽에서 빤히 그를 주시하는 표정을 유지한 채 천천히 말했다. “답은…….”
“천하무쌍.”
멍멍대작전 : 레스큐 독(2016)
어느 개의 사명 : 베일리 어게인(2018)
충견 하치 : 하치 이야기(2002)
천하무쌍(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