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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삼국

《군사연맹》 순욱 역 왕경송 인터뷰

『계면오락』에서 진행한 배우 왕경송 씨의 인터뷰입니다.
드라마 《군사연맹》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 번역하였으며, 15화 이후 내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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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경송은 오수파의 《군사연맹》에서 순욱을 맡았다. 그가 최근 10년 동안 맡았던 역할들 중 분량이 가장 적은 역할이었으나 왕경송은 열심히 공부에 몰두했다. 『삼국연의』와 『삼국지』는 필독이었고, 후세인의 주석도 보았으며, 그 중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어 쓰고 버릴 것들을 가렸다. 극중에서 조조가 순욱에게 내리는 빈 찬합은 순욱에게 더는 한나라의 녹이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삼국지』와 주석에는 상세한 설명이 없었으나, 왕경송은 마왕퇴馬王堆에서 출토된 '마음껏 드시오君幸食' 찬합을 참고해 삼층 찬합을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순욱의 출사로부터 사망까지가 마침 30년이었기 때문이다.
(역주 : 마왕퇴는 서한시대의 무덤으로, 무덤의 주인인 노부인의 미라를 비롯해 막대한 양의 유물들이 완전한 상태로 출토된 것으로 유명함)



(중략)



웨이보에 쓰신 글을 보니 사실 《군사연맹》에서는 비교적 분량이 적었다고 하던데, 그럼에도 이 역할을 연기하기로 하신 이유는요?


각본, 그리고 팀 자체입니다. 사실 이 팀과 함께 작업해 본 것은 처음이라 친한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역시 각본이 굉장히 뛰어났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시대극에서 본 적이 없는 훌륭한 수준의 작품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팀의 정성이 마음을 끌었죠. 이 작품을 하면서 50~60씬 정도를 찍은 것 같은데, 10년 동안 제가 한 작품 중 가장 비중이 적었던 역할입니다.


순욱을 보면 초반에는 조조와 비교적 사이가 좋았죠. 나중에 조조가 위를 건국하려는 때가 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이상이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이런 대조를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우선 말해 두어야겠는데, 초반에 순욱은 조조를 돕는 게 아닙니다. 그가 조조를 도운 것은 한을, 한 헌제를 돕기 위해서였지요. 삼국시대의 역사적 조건은 특수합니다. 군웅이 할거하여 온 천하에서 다투는 와중에 한은 이미 껍데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한의 신하라는 명분을 원했던 것은 조조 뿐이었고 그는 세력이 강했어요. 순욱 역시 조조에게 발전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그를 도왔던 겁니다. 이 때 조조를 도운 것은 그가 품었던 이상, 다시금 한 천자를 보좌하겠다는 이상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결국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지요(역주 : 조조와 순욱의 마지막 독대 장면을 말함). 조조가 위왕으로 등극하고, 위왕은 한 헌제와 사실상 동등한 지위이기 때문입니다.

위왕으로 봉해진 조조는 위왕부 문으로 들어서면서 문 위에 활活 자를 씁니다. 이 때 순욱은 등장하지 않는데, 그런 행동에 찬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욱의 재등장은 위왕부에서 조조와 마주앉아 통곡하며 묻는 장면이죠. "명공이 아직도 한의 신하입니까?" 조조가 내딛은 그 걸음은 순욱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순욱의 마지노선이었어요.


그러게요. 저도 삼국시대 역사를 보면 순욱은 참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순욱이 조조가 자신과 함께 한의 신하 노릇을 할 거라고 믿었던 이유는 뭘까요?


순욱이 사당에서 순유와 이야기하며 조상들의 위패 앞 등잔에 기름을 부을 때 하는 대사 기억나십니까? "만고의 긴 밤 속에서는, 아무리 미약한 빛이라도 그것을 따라 쫓는 수밖에 없다, 죽은 뒤에야 그만둘 수 있다"는 대사 말입니다. 그 대사로 이해된다고 봅니다.

조조 이외에 누가 있었지요? 조조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그래서 조조를 따랐던 겁니다. 그렇다면 조조는 20년 동안 그렇게 친밀한 관계로 지냈으면서 순욱이라는 사람을 몰랐을까요? 당연히 샅샅이 알고 있었을 겁니다. 순욱은 오로지 한에 충성하는 한의 신하죠. 그런데 왜 순욱을 썼을까요? 그의 모략과 지혜가 중국을 통일하겠다는 자신의 꿈에 보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조조가 위왕의 왕좌에 오른 그 날부터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정이야 있지만, 그 날부터 뜻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버렸죠.


조조에게는 유명한 모사가 많습니다. 삼국지 팬들은 조조와 모사들의 관계 중 곽가와 조조는 친구, 순욱과 조조는 동료라고들 하더군요. 이런 해석에 동의하시나요?


동의합니다. 곽가는 애초 순욱이 조조에게 추천한 사람이었죠. 순욱은 조카인 순유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천거했습니다. 저는 감독의 해석과도 같은 의견인데, 곽가는 좀 더 조조의 가신 같은 사람이고 순욱은 비즈니스 관계라는 겁니다. 하나는 친구, 하나는 비즈니스.

곽가와 다른 점으로, 순욱은 자신이 조조와 너무 가깝게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둘 다 신하인데, 그냥 당신은 사공이고 나는 상서인 겁니다. 당신이 위왕이라도 나는 여전히 상서고, 관직이 다를 뿐 여전히 신하지요. 하지만 곽가는 군사좨주로 처음부터 조조의 내각에 있었습니다. 비교적 스케일이 작아요.


우화위 씨와의 촬영은 아주 짜릿했다고 말씀하셨었죠. 구체적으로 어느 장면이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역시 마지막 그 장면이죠. 그가 아직도 한의 신하냐고 묻는 장면. 화위와 이야기를 할 때 이 장면은 어느 한 사람만 잘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도와가며 해야 하는 장면이고, 그런 공통의 견해를 바탕해서 그 정도 퀄리티가 나오고 시청자 여러분께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그 장면은 리듬과 감정 전환을 전부 조조가 이끌어 나가는 장면입니다. 그건 아주 분명해요.

제가 웨이보에서 이 장면을 이야기하며 우화위가 정말 대단하고 훌륭했다고 칭찬한 것은 그런 전환이 있을 때마다 아주 적절한 포인트를 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 앞에서 들어올 때, 순욱이 앉았을 때,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의 그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는 모두 순욱에게서 비롯되죠. 그런 식으로 상호 보완이 이루어진 장면입니다.


그 장면이 특히 잘 나왔다고 생각하세요?


제 생각에 그 장면은 한 번 봐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워요. 담긴 정보량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원래 각본에는 아주 많은 인물관계가 압축되어 있지만 배우가 연기할 때나 감독이 해석할 때는 압축이 없습니다. 몇 분짜리 짧은 장면 안에서 (두 사람의) 모든 역사를 뽑아내려는 시도였고 우리도 공부를 많이 해야 했죠.


시청자에게는 충격을 주고, 배우로서도 짧은 시간 내에 소화하기 어려운 장면이었겠죠. 작업 전에 공부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나는 배우고, 내가 연기하는 사람은 순욱이니까, 순욱과 관련 있는 것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삼국연의』의 묘사나 『삼국지』의 묘사, 후세인들이 『삼국지』에 달아 놓은 주석 같은 것들이죠. 전부 해석이 달라요. 그럼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를까? 그런 것을 찾아낸 뒤, 당시의 어떤 역사적 환경, 미감, 건축, 복식, 행정 등과 결합시킵니다. 그러면 인물이 비교적 명징한 모습으로 나타나죠. 그냥 그런 작업을 한 겁니다.


조조와의 그 장면 말인데, 조조가 마지막까지 칭제하지 않은 것은 순욱의 그 군자다운 직시를 마주할 수 없어서였다는 말도 있죠. 그런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습니다. 조조는 오만합니다. 마지막에 순욱에게 그런 말을 하죠. 영원히 한을 섬기는 신하로 남을 수 있다고, 끝까지 칭제하지 않을 수 있다고요. 하지만 순욱이 그에게 물은 것은 칭제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조조는 죽을 때까지 칭제하지 않죠. 순욱이 조조에게 물은 것은, 한 발짝이 남았는데, 이미 칭왕을 했는데, 칭제까지 얼마나 남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신하가 아닙니다. 한 고조가 제도를 세운 이래 유씨가 아닌 왕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유씨 아닌 왕이 나오면 모두가 그를 공격할 수 있어요. 유씨 아닌 왕은 기본적으로 천자와 동등했습니다. 『삼국지』에도 적혀 있는데, 조조는 몇 번이나 천자의 수레와 면류관을 썼습니다. 제도상으로는 이미 천자와 동등했고 칭호만 달랐던 것이죠.


그럼 순욱도 그런 걸 알았겠군요.


잘 알았습니다. 순욱은 너무 잘 알았어요. 순욱은 그가 한 발짝씩 걸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공에서 승상으로, 대왕, 위왕으로. 마지막 한 발짝은 천자 등극이죠. 어쩌면 순욱의 마지막 말이 조조를 그 자리에 붙들어 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조의 입장에서 보면 저는 그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조는 분명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조조가 칭제하지 않은 것은 명분 때문입니다. 온 천하 백성들이 그가 정의의 군대를 일으킨 인덕이 두터운 사람이라고 여기게 만들고 싶었겠죠.


《군사연맹》처럼 역사를 재구성한 작품은 인물의 인생에서 앞뒤 사건을 의도적으로 바꾸거나 하기 마련인데,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거라는 의견도 있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원래 『삼국연의』부터가 소설입니다. 당대인이 쓴 것도 아니죠. 역사에는 진실이라는 것이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어느 것이 진실일까요? 역사책으로 놓고 봐도 전부 지배층이 만든 것 아닙니까. 그 위에 쓰인 것들이 진실된 역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역사는 영원한 수수께끼고, 진실에 가까운 진실이 있을 뿐 절대적 진실은 없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고요.

두 번째로, 드라마는 예술 작품이지 역사책이 아닙니다. 진실을 쫓고 싶으면 TV를 볼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에게 가야겠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특정 시대에 대해 갖는 대강의 이미지가 있죠. 당나라 때는 국제적으로 번성했다, 하는 식으로요. 위진 시대에 대해서는 풍류의 시대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삼국시대 인물들은 비교적 호방하고 활달해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생각은 없으세요?


삼국시대는 호방한 시대가 아닙니다. 사람 한두 명을 꼽으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동한 말기는 황건기의부터 시작해 군웅이 패권을 다투고 전쟁의 불꽃이 사방에서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온 땅에서 살육이 벌어졌고 또 온 땅에 영웅들이 가득하던 시대였죠. 저마다 군대를 일으켜 왕이 되려고 하면서 백성들은 먹고 살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주 비장한 시대였고, 일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중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앙의 시대였습니다.
분열의 시대였죠. 보통 위촉오 큰 덩어리 세 개만 생각하지만 사실 역사책에 쓰이지 않은 작은 나라들이 더 있었습니다. 백월이나 맹획 같은 사람들도 전부 제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