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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삼국

《군사연맹》 각본가 상강 인터뷰


1994년 구판 《삼국연의》나 2010년 신판 《삼국》은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삼국지의 시각과 고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방식은 명작을 리메이크하는 데 있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이며, 가장 무난한 길이기도 하다. 만일 또다시 《삼국연의》의 틀을 고스란히 따라 찍어낸다면 어떨까. 아무런 신선함도 없이 기술 발전만 드러내는 작품은 그저 돈 낭비에 불과하며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절찬 방영 중인 시대극 《군사연맹》은 이런 패턴에 빠져들지 않았다. 위촉오 삼국이 정립하기까지 난세의 다툼을 비중 있게 다루지도 않고, '유비가 조조에 대항한다'는 기본적 경향도 버리고, 반대로 조위의 시각에서 파고들어 파란만장한 사마의의 일생을 인간적으로 묘사한다. 이렇듯 전통적인 삼국지 이야기와 명확히 구별되는 이야기 구조는 《군사연맹》이 뜨거운 논의의 대상이 된 주요 원인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각본가 상강常江은 인터뷰에서 단언한다. "일부러 사마의를 미화하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ㅡ전통에 대한 도전과는 관계 없다, 드라마에 개연성을 부여했을 뿐


《군사연맹》은 5년이나 갈고 닦은 대작으로, 각본 탈고에는 4년이 걸렸다. 개요를 짜고 편을 나누는 데에만 1년이 들었다고 하니 제작자 오수파와 제작팀이 얼마나 각본을 중시했는지 알 만하다. 《군사연맹》의 각본은 각본가 상강이 지금까지 쓴 것 중 가장 오래 걸린 작품이기도 하다. 상강은 지금 회상하면 그렇게까지 '창작에 정성을 들이는 팀'을 만난 것은 아주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창작 과정에서 오수파 선생님은 저에게 엄청나게 양보해 주셨어요. 천천히 (방향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셨죠. 쓰는 도중에 여러 번 다투고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요. 하룻밤 내내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삼국시대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아주 한정적이다. 『삼국지』나 『삼국연의』 등의 자료면 당시 일어났던 일들은 대강 훑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료와 기록을 통독한 후, 상강은 이 시기의 역사에 대해 나관중과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어떤 부분은 아예 정반대가 되기도 했다. "전통희곡이나 전통문학에서의 사마의는 매우 평면적입니다. 나관중은 『삼국연의』를 쓰면서 유관장 등의 인물은 아주 입체적으로 묘사했지만, 사마의에 대해서는 말년부터 다루기 시작해 한 면밖에 보여주지 않아요. 사마의는 제갈량의 상대로서 등장하는데 비열하고 교활하죠. 전통문화에서 사마의는 일흔이 넘어 정변을 일으키고 손자가 찬탈을 했다는 것 때문에 더더욱 간신처럼 표현되었습니다. 전통희곡에서는 아예 하얀 얼굴로 나오죠. (역주 : 중국 전통희곡에서 하얀 분장은 악인을 상징한다) 하지만 저는 사마의의 온전한 한평생을 쓰려고 했습니다. 사마의가 스무 살 때부터 그랬을 리는 없잖아요. 그는 한평생 네 시대를 겪었고, 그가 시대에 끼친 영향도 시대가 그에게 끼친 영향도 아주 컸습니다. 사마의는 조조 밑에서 출사했고 그가 일흔 살이 넘어가면서 위 왕조는 쇠락하죠. 살아가는 동안 감정이나 이상, 포부에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전통적인 이미지에 도전한다기보다는 이 사람의 일생을 온전하게, 그리고 개연성 있게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애써서 미화하고 싶지도 않았고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혼란한 시대 속에서 실패한 사람이건 성공한 사람이건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고평가 혹은 저평가할 필요는 없죠."

오수파의 연기에 대해 상강은 각본 이상의 경탄을 가져다 주었다고 평했다. "예를 들면, 『삼국연의』의 사마의 서사에는 그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없죠. 하지만 사람에게 일이나 전쟁터가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집에서 보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사마의의 가정이나 아들딸에 대한 감정을 많이 넣었습니다. 오 선생님은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아주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 줬어요. 특히 노년 사마의의 연기는 캐릭터를 완전하게 끌어올렸죠." 상강에 의하면, 역사 속 처음 이십대 시절의 사마의는 난세로부터 도피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는 숨으려 했고, 조조에 대항해 몇 가지 유명한 사건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런 사마의와 돌연 정변을 일으키는 70대의 사마의는 별개의 인물이다. 그는 다만 제 한몸을 보신하고자 했던 서생이었으나 조정에 출사한 후 온몸으로 싸우고 구르면서 욕망이 생겨났다. 욕망으로 타인을 망가뜨린 끝에 자기 자신마저 망가뜨리는, 그야말로 시대와 들어맞은 사람의 삶이다. "오수파 선생님은 젊은 사마의가 뛰쳐 나가려는 마음을 와호장룡처럼 눌러 참는 모습과 노년에 그것이 분출되는 모습을 정말 잘 연기해 주셨습니다. 무서우면서도 아주 신산한 기분이 들게 하죠. 사마의라는 인물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어요."


ㅡ유명한 전쟁 장면은 가볍게 쓰고, 전쟁의 뒷면에 중점 둬


최근 있었던 《군사연맹》 전문가 토론회에서 감독 장영신은 이렇게 말했다. 구판 《삼국연의》와 신판 《삼국》이 이미 있는데도 《군사연맹》을 제작하는 것은 아주 부담이 큰 일이었고, 돌파구가 절실했다. 따스하게 그리고, 역사적 색채는 가볍게 하자, 처음 제작팀의 창작의도는 그것이었다.

사실 시대 및 인물이 일부 겹치는 것을 제외하면 《군사연맹》과 다른 삼국지 영상물은 창작 의도가 거의 완전히 다르다. 기존 삼국지 영상물들이 웅대한 역사적 배경 속 난세의 다툼과 여러 영웅들 위주로 묘사했다면 《군사연맹》은 사마의가 겪는 성장과 변화 및 그의 역할에 중점을 두었다. 저런 이유 때문에 기존의 두 삼국지 드라마에서는 유명한 전쟁 장면들을 재현했으나, 《군사연맹》의 전반부는 삼국시대의 중요한 전쟁을 거의 다 비켜간다. "예를 들면 다들 알고 계실 적벽대전이나 관도대전......" 상강은 이렇게 설명했다. "구판 《삼국연의》와 신판 《삼국》을 포함한 기존 드라마들은 모두 이 전쟁들을 아주 휘황찬란하게 연출했죠. 전쟁 장면을 파고듬으로써 거기에서부터 다채로운 인물들을 끌어내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마의의 시각으로 들어가는 쪽을 선택했고, 많은 중요 사건들을 잘라내거나 골라내야 했습니다. 그 시기 사마의가 전쟁에 말려든 적이 없으니 단념할 수밖에 없었죠. 《군사연맹》은 전쟁의 뒷면, 조정 내외의 수 싸움에 초점을 맞춥니다. 후반에 사마의는 제갈량과 많은 전투를 치르지만 우리는 전쟁의 배후에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더욱 관심을 뒀습니다." 오수파 역시 극의 전반부 중 전쟁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부분은 한 장면밖에 없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나마도 "열다섯 적 군에 들어가 여든 살에야 돌아왔네, 길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 우리집에 누가 남아 있나 물으니......" 하는 시를 통한 것으로, 해마다 벌어지던 전쟁이 중원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고통을 표현했다고 한다. (역주 : 송대 편찬된 『악부시집』에 실린 한대의 시로, 오랜 전쟁을 치르고 집에 돌아왔지만 가족은 모두 죽어 무덤밖에 남지 않았고 밥을 해도 함께 먹을 사람이 없어 홀로 운다는 내용이다)

보통 대부분의 각본은 영상화 과정에서 내용이 줄어드는데, 영상으로는 텍스트 수준의 묘사를 해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혹은 각본의 방대한 스케일을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사연맹》은 연기자들의 고른 호연과 뛰어난 미술 고증, 시의적절한 대사 등으로 호평받으면서 각본에도 가산점이 주어지고 있다. 상강은 전체적인 드라마의 기조를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인물을 쓰려면 첫째는 존중, 둘째는 공감입니다. 그 시대에는 조조나 조비처럼 일세를 풍미한 인물이더라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괴로움을 많이 겪었을 거예요. 각본가로서 그들의 절정이나 성취를 쓸 수도 있었지만, 가장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들의 괴로움이었습니다. 큰 뜻을 펼치지 못하고, 살아 있는 동안 천하가 통일되는 것을 보지 못했던." 각본에만 4년이 걸린 대작, 마치 모래알 속에서 금을 찾아내는 것 같았던 과정에 대해 상강은 감회에 젖어 말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쉽지 않았죠.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꽉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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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북경신보 2017. 07. 07.

의역 많음. 오역 지적 환영합니다.
덧붙여 각본가 상강은 여성입니다. 여성 작가로서 대작 사극을 집필한다는 대담한 시도 운운한 기사도 있었음.